김영하작가의 책은 참 많이 빌려도 놓고, 구입해놓기도 했는데, 이제서야 첫 작품을 읽었다. 그것도 소설이 아닌 산문집을. 그래도 워낙에 드라마나 영화화 된 작품이 많은 작가인지라 재미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점은 이미 잘 알고있다. 그리고 즐겨보았던 알쓸신잡에서도 대활약(?)을 해주었으니, 작가의 세계관이나 생각 등은 크게 낯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소설보다는 산문집이 어쩌면 더 익숙한 느낌일 수도 있었겠다.
책들을 검색해보니, 이 산문집들이 거의 시리즈로 나오는 것 같던데, 《보다》, 《말하다》, 《읽다》 뭐 이런 시리즈였던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은 그 시리즈들 중에 첫번째 작품집인 걸로 알고있다. (A형인 나는 시리즈물을 순서대로 읽는 게 은근 중요한 문제이다.) 아마도 작가가 보고 관찰하는 입장에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풀어놓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대한 의견도 있고, 책에 대한 독자로서의 의견도 있고, 여러가지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들도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좋아하는데, 에세이는 그 글을 쓴 작가들의 생각을 여느 다른 글보다도 잘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감이 되는 글을 만나면 기쁘고, 생각지 못했던 글을 만나게 되면 고맙다. 김영하 작가의 이 《보다》라는 작품은 나에게 그 기쁨과 고마움을 다 느끼게 해 주었는데, 무엇보다 생각지 못했던 관점들도 많이 제시해주어 좋은 작품이기도 했다. 가볍고 즐겁게 읽기에 좋은 에세이집들이 정말 많지만, 조금은 무게감도 있는 작품집들이 있는데, 이 작품집은 적절한 발란스를 가졌다고나 할까? 쉽게 말하면 마냥 가볍지 않은데, 재미있게도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는 뜻 되겠다. 고로... 결론은, 다음 시리즈의 산문집들도 읽어봐야겠다는 것으로. ^^
남의 위험은 더 커 보인다. 반면 자기가 처한 위험은 무시한다. 그게 인간이다. (중략) 죽음과 종말을 떠올리면 현재의 삶은 더 진하고 달콤해진다. 로마인들은 이천 년 전에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파국을 상상해보는 것은 지금의 삶을 더 각별하게 만든다. 그게 바로 카르페 디엠이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그렇게 결합돼 있다.
촬영은 엉망이고 이야기는 비약과 생략이 난무한다. 그런데 그는 그게 '새로운' 영화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신들이 알고 있던 영화는 이미 낡았다'고 비판했다. 그의 전략은 먹혔다. 몇몇 사람들은 덩달아 고다르풍의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그런 흐름은 누벨바그라 불리기 시작했따. 갑자기 모든 무대에 샤워부스가 설치되었고 그로부터 한동안 샤워하면서 얼마나 노래를 잘할 수 있느냐가 새로운 미학적 기준이 되었다.
세상에 맞춰 자신을 바꿀 것이냐, 세상을 자기에게 맞게 바꿀 것이냐. 아마도 모든 예술가의 고민일 것이다.
파묵은 이 대목을 길게 인용하면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풍경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소설은 '심리적 3차원'의 세계라고 천명한다. 파묵의 이 언급은 폴 오스터가 영화와 소설을 각각 2차원과 3차원에 비유했던 아네트 인스도르프와의 인터뷰를 연상시킨다. 오스터는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 컬럼비아 대학교 영화학과장인 인터뷰어를 도발한다. 무슨 문제가 있냐니까, 영화는 '무엇보다도, 2차원'이라고 대답한다.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현실'에 머물고 싶고, '무엇이든 직접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소설에 몰입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안나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세상을 보는 것이고 그 세상은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이다.
"꿈을 꿀 때는 그 꿈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꿈이니까요. 우리는 소설도 진짜라고 생각하며 읽습니다. 하지만 머리속 한구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순되는 상황은 소설의 본질에서 옵니다. 소설 예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바탕을 둡니다."(오르한 파묵, 『소설과 소설가』, 민음사, 2012)
반면 책은 일종의 필수품이다. 롤렉스 시계가 없는 사람은 있어도 책이 없는 사람은 없다.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도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는 들여다볼 것이다. 필수품이 되면서 책은 점점 더 저렴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책값이 너무 비싸다는 사람들이 다수다. 더 싸게 팔라고 아우성친다. 그래서 정가에서 할인해주고 선물도 준다. 어쩔 수 없다. 유니클로의 옷값이 저렴하다는 걸 한탄할 필요가 없듯이 책값이 싸다고 세상과 소비자를 개탄할 이유는 없다. 싼 것은 더 싸지고 비싼 것은 더 비싸지는 시대다.
이항대립은 문제를 명쾌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편리한 장치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은 이항대립 사이 어딘가에서 부유한다. 현대의 가족들은 전선이 분명하게 그어진 정규전이 아니라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시가전을 치르고 있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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