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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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이세돌 『판을 엎어라』

| Mashimaro | 2019. 12. 12. 08:30






얼마전에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이세돌의 은퇴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이 책의 표지가 떠올라서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바둑에 대해서 문외한이고, 어렸을때 아버지에게 배우면서 13점 혹은 9점을 깔고 바둑을 두었던 정도가 바둑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기억의 전부이다. 물론 지금은 어렸을적 두었던 그 룰 조차도 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만큼 나에게는 바둑이 어려웠고, 또 그렇게까지 흥미로운 놀이거리는 아니었다. 물론 오목은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을까?


일반인들에게 이세돌은 아마도 알파고와의 승부를 통해서 유명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물론 이세돌이라는 이름 자체는 기억한다. 어려서부터 워낙에 화제가 되는 인물이기는 했다. 물론 내 세대에서는 이창호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지만 말이다. 그러고보면, 바둑이 완전히 대중적이지는 않아도, 은근 유명한 바둑기사들은 일반인들에게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나 멀었던 바둑이야기를 책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바둑에 대해서 엄청나게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바둑을 접하는 자세, 혹은 경기에 임하는데 있어서 마인드컨트롤의 중요성 등을 계속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세돌 자신의 지금까지의 바둑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준다. 


어쨌든, 동년배 혹은 나보다 어린 친구의 프로페셔널한 모습과 그러한 프로가 되기까지 겪은 시행착오들을 접할 수 있다. 어찌보면 진부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꽤나 중요한 이야기들도 있다. 당연하면서 중요한 이야기들이라고나 할까. 전체적으로 글이 담백하다. 아니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읽는 나도 매우 담백하게 읽을 수 있다. 크게 감흥은 없을지 모르지만 한 젊은이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나로하여금 그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지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바둑을 시작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바둑을 하려는 가장 첫 번째 이유가 ‘내가 바둑을 하는 게 재미있고 좋기 때문에’가 되어야 된다. ‘누구를 존경해서’, ‘뭐가 되고 싶어서’는 바둑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데 결정적 이유가 되지 못한다.


내가 만약 노력을 안 한다는 주위의 말에 휘둘려서 내 스타일이 잘못된 건 아닐까 불안해하고, 그래서 남들처럼 몇 시간씩 바둑판 앞에 앉아 기보를 놓거나 연구하며, 공부 방법을 바꿨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났을 것이다.


결국 최고와 2인자를 가르는 종이 한 장의 차이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특별한 ‘무엇’에 있다. 자신만이 가진 개성과 스타일을 끊임없이 가다듬고 발전시키고, 주위에서 뭐라 하든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자신만의 바둑을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이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최고에게는 분명 남들과 다른 점, 특별한 점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점이 잘 드러나고 어떤 사람은 쉽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정상까지 올라가기는 정말로 힘들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다.


어?’ 하고 큰 실수를 한 걸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갑자기 붕 떠 있던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마음이 냉정한 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승부욕이 빠져나가면서 마음이 비워졌다.      ‘그래. 이 판, 이미 이렇게 나빠졌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보자.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지금은 더 중요하잖아, 마지막 한 수까지 끈덕지게 둬 보자.’


역시 과유불급이란 말이 진리다. 적당한 의욕은 좋지만 심리 상태를 차분하게 유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의욕만 너무 앞서면 돌도 무거워지고 행마가 둔탁해진다.


이제는 바둑을 이겼다고 해도 그 바둑이 이세돌답지 않은 내용이라면 그다지 자랑스럽진 못할 것 같다. 프로바둑기사에게 기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점점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금도 바둑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수백 년 전의 명국 기보를 본다. 나는 세상에 없어도 기보는 계속해서 남아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된다. 훗날 사람들은 이세돌이라는 기사에 대해서 무엇으로 평가를 할까? 그것은 기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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