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사이트에 추천도서로 계속 올라와서 눈에 띄었으나, 일부러 읽지 않고 버팅기고 있던 책이었다. 사실 2-3년 정도 전부터는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스트레스로부터 꽤나 탈출한 느낌도 들었고, 또 비슷한 테마의 내용들을 작년에 꽤 많이 읽었다 싶어서였다. 하지만, 또 나를 유혹하는 강력한 포인트가 있었으니, 리디셀렉트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는 것.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완독한 이후에, 다음으로 무슨책을 읽을까? 하다가, 왠지 이어서 이 책을 읽고싶다는 생각이 첫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훅~ 하고 다 읽어버린 책이다.
그렇다. 이런 소재의 책은 이제 그만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또 이게 읽다보면 막 공감이 되고 계속 또 빠져서 읽어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그만큼 공감하는 부분들이 꽤 있었고, 또 저자의 참고문헌들 또한 접하거나 공감하며 읽었던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작가의 생각을 이해해가며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짐작하다시피, 이 책은 '연애'라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를 강요하는 것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상황, 실정 등을 나름 열심히 이야기한다. 완전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난 또 여기에 공감하며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접하고, 나도 이미 알고있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질릴법도 한 이러한 이야기들을 나는 왜 계속 놓지 못하고 읽게 되는 것일까? 알고 있어도, 왠지 자꾸 알아주길 바래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무언가를 확 바꿀수도 없고,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생각들, 문화들을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게 당연한게 아니야.. 이젠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시간이 고팠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자꾸 이런 책을 읽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오랜만에 나름 힐링이 되는 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 그리고..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으면서,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이 언니들 진짜 재미있게 글 참 잘쓴다. ^^
서두를 필요는 없다. 반짝일 필요도 없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될 필요가 없다. _버지니아 울프
참나, 연애가 무슨 고스톱이냐고. 대충 짝 맞다 싶으면 GO 하고 보게.
연애 공백기가 길어지는 사람들에게는 ‘넌 너무 이것저것 따져서 문제야’, ‘현실 연애하고 싶으면 눈 좀 낮춰’, ‘그러다가 결혼 못한다’고 겁을 주는 것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굳이 자신이 세운 이상적 반려인의 허들까지 낮춰가며 울며 겨자 먹기로 꾸역꾸역 연애와 결혼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야 할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런 현상은 국내에서만 한정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일은 아니다. 시슬리 해밀턴은 자신의 저서 『거래로서의 결혼』에서 “독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 반대로 결혼 제도의 위신은 실추된다”고 서술했다. 여성에게 결혼 대신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 자립 대안이 ‘명확히’ 존재하고 그것을 남성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성취 가능하게 된다면, 어떤 여성도 결혼 생활이라는 ‘공짜 노동’을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절반을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존재’로 보던 남성들이 때아닌 물벼락을 맞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이유다.
법률 구문 속에도 명백히 기록되어 있는 여성과 남성의 젠더 롤이 공적 영역으로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고(高)스펙 여성의 출현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권력이다. 네이밍을 하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똑똑하지 않은가? 이미 오랜 기간 동안 보이고, 판단되고, 점수 매겨지는 ‘피동적’ 입장에 놓여있던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분할통치 기준을 내재화하고 있다는 점을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여자보다 네가 예뻐.’ ‘쟤보다 네가 말랐어.’ ‘네 친구보다 네가 더 어려 보여.’ 여자의 눈으로 다른 여자를 심사하고 품평하는 구조를 완성시켜놓고 나면, 이제 남성들은 두 손 놓고 편안히 앉아서도 상향평준화된 외모와 몸매의 여성을 길거리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개념녀’라는 여성의 기대 역할 프레임을 하나 더 던져 준다면? 이것이 바로 현대판 칠거지악이요, 삼종지도의 완성 아니던가? 이런 걸 두고 ‘손 안 대고 코 풀기’라고 하던가?
인터넷 상에서 사용하는 소셜 그루밍이란 위와 같은 동물행동학적 용어에서 파생된 개념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사진 및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도록 개발된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기반으로 성행하기 시작한 ‘따봉충’ 현상을 지칭한다. 즉, 소셜 미디어 속 친구들의 프로필이나 각종 사진에 댓글을 남기고 ‘좋아요’를 누르는 사회적 참여 활동(social engagement behavior)을 말하는 것이다.
일베(일간 베스트)를 위시한 각종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성을 겨냥한 혐오성 워딩이 쏟아져 나왔다. 일상생활에서도 공공연하게 사용됐다. 이때 누구 하나 앞장서서 ‘여자를 비하하지 말라’, ‘욕하지 말라’, ‘성별 대립 구도를 만들지 말라’고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긴 침묵과 동조 속에서 간간이 “난 저런 남자는 아니야”라는 틈새 PR 소리만 들려왔을 뿐이다. 남성들이 진정으로 여성을 사랑했다면, 어째서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에게 쏟아지는 혐오와 멸시를 묵묵히 팔짱만 낀 채 방조하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그들은 여성을 사랑하지 않는다. 마치 할리 퀸을 대하는 조커처럼 말이다.
여성의 삶은 20대, 늦어도 30대 안에는 일단락된다는 ‘여성판’ 연령주의에서 벗어나기를,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도전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청운의 꿈을 청년 시기에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 30, 40, 50, 60살 이후에도 지속하여 가질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나의 남자친구, 나의 남편, 나의 아들, 나의 직장 상사의 코멘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삶에서 벗어나길 갈망한다. 내가 어떤 꿈을 꾸고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노력과 도전으로 어떤 실패를 겪었고 또 어떻게 다시 일어서게 되었는지가 ‘HERSTORY’가 되는 삶을 꿈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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