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읽기 덕분에 또 한번 전혀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읽기 시작한 작품인데, 《속죄》와 비슷한 스토리라고 그래서 사실 걱정을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물론 《속죄》는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고, 특히 그 마지막 반전이 정말 뒤통수를 얻어맞은듯 했을 정도로 임팩트가 있어서 좋았지만, 문제는 그 재미라는 것이, 정말 고구마먹은 듯한 설정을 꾸역꾸역 읽어낸 후에 맞이할 수 있는 반전의 즐거움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면서도 살짝 걱정을 하면서 읽기 시작하였고, 아니나 다를까... 초반에는 정말 진도가 잘 안나갔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의 나의 평점은 별 다섯개! 물론 그렇게 느끼지 않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확실히 시작되는 스토리는 《속죄》와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 결말은 완전히 다른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속죄》가 정말 무엇이 진정한 '속죄'인가를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을 읽고나서는 마치 한편의 신앙서적을 읽은 느낌이다. (물론, 이건 내가 크리스천이라서 하는 표현)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더 그런가? 교회다녀와서 완독했는데, 마치 중요한 설교메시지를 들은 느낌이랄까? ㅎㅎ 물론 이 책이 영국의 구교, 신교의 갈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종교소설은 아니다. 단지 내가 받은 감상이 그랬다는 것. 아무래도 루시골트의 80여년의 인생이 결국 (내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결말을 맺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은 처음 읽어봤는데, 이렇게 따뜻한 작품일 줄은 몰랐다. 첫 시작이 그렇게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었는데, 이러한 스토리를 이렇게 결말지어버리다니. 그것도 매우 잔잔하게 말이다. 말 그대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물론 초반에 고구마을 극복하는 과정은 거쳐야한다. ^^;; 마지막 역자해설을 읽어보니, 이 작가의 작품이 많이 소개되어있지는 않다고 하던데, 앞으로 더 많이 번역되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레이프의 안전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점점 강렬해지던 자신의 사랑을 존중하지 않은 것 때문에 스스로를 배신한 것처럼 느꼈다는 말은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고백이었으며, 그것이 한 줄 보태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공정하게 보자면 사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전쟁과 그 종결 때문에 가능해질 수 있는 일에 희망이 생기면서, 사랑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 또한 배신으로 보였다.
그러나 수녀들은 우연을 믿지 않는다. 신비가 그들의 본령이다. 숲에서 신비를 벗겨내면 서 있는 목재만 남는다. 바다에서 신비를 벗겨내면 짠물만 남는다. 그녀는 응접실 서가에 있는 책을 처음 읽던 무렵 어딘가에서 그런 말을 발견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그녀는 그 말이 떠올랐을 때 수녀들에게 전해주었다. "어머, 깔끔하게도 표현했네요!"
자비의 은혜, 수녀들은 그렇게 말했다. 음악이 연주되고 자신을 죽일 살인자들이 집 안에 들어와 있는 동안에도 용서는 성 체칠리아의 봉헌송이었다. 그들은 이탈리아의 그 성당을 찾아갈 것이다. 언젠가는, 그들은 말했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웃어넘긴다. 일어난 일은 그냥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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