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문예판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사실 다시 읽었다고는 하지만, 워낙 어렸을 때 들춰봤던 기억만 있고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단지 굉장히 우울하고 무서웠던 기억이 남아있어서, 이번에 폭풍의 언덕을 읽으려고 결정하기까지도 꽤나 망설여졌던 기억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분량에 비해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는 스토리이긴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고구마먹은 듯이 답답한 책도 정말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중반을 지나갈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해졌고, 텍스트를 읽고 있을 뿐인데 답답하고 열이 받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일전에 완독을 했던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읽을 당시, 함께 읽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인물 브리오니에 대해 고구마 먹은듯한 답답함을 토로했고, 나 역시도 1부를 읽으면서 그러한 감정이었는데, 이 『폭풍의 언덕』을 읽다보니, 브리오니 정도는 답답한 축에도 못드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등장하고 있는 대다수의 인물에게서 내가 짜증과 분노를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일단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우울하고, 사랑이라는 테마를 들이밀면서 마치 낭만적인 소설을 표방하고 있지만 난 이 소설이 복수극에 가깝다고 본다. 그만큼 히스클리프의 존재감이나 분량이 대부분이었고, 그 한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황들이 너무 부조리하면서도 절대적이었다. 이건 뭐, 막장드라마의 끝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요즘의 막장드라마보다 더 마음에 안드는 것은 결말 조차도 속시원한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히스클리프가 사이코 패스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그의 죽음과 함께 어느정도의 평화가 찾아왔다는 정도..?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성씨에 대한 표현이 헷갈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처음에 읽으면서부터 유심히 기억해가며 읽었더니 헷갈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왜 이러한 전개가 되는가 생각해 봤더니, 정말 작은 지역 안에서 몇 안되는 등장인물들이 복작복작해대는 그런 설정이어서이지 않나 싶다. 거기다 사촌끼리 결혼을 하네 마네 하니.. 성씨나 이름이 헷갈리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다 죽음이라는 장면이 꽤나 자주 등장하는데, 대부분이 허약하거나 일찍 사망한다. 이부분은 아마도 실제로 브론테 가문의 자매들이 단명했던 경험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에밀리 브론테도 30세에 사망했기도 하고..
아무튼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읽으면서 감정의 기복을 심하게 일으켰던 작품이긴 한 것 같다. 이렇게 짜증내며 읽은 작품도 거의 없을것 같은 느낌? 어떻게 말하면 그만큼 등장인물들에게 몰입하게 해주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난 버지니아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에밀리 브론테를 극찬한 부분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나에게는 『제인 에어』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을 정도? 저자인 에밀리 브론테가 이 작품을 통해서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진정 궁금해졌다는 의문점만을 나에게 남겨준 느낌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지극히 내 개인적인 감상이다. 내 깜냥으로는 이 작품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나부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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