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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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프로데 그뤼텐 『이케아 사장을 납치한 하롤드 영감』

| Mashimaro | 2017. 6. 13. 01:32






사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조금 당황스럽다. 북유럽쪽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라는 것이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라든가,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같은 유쾌한 작품. 혹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들과 같은 대부분의 스웨덴 소설이었는데.. 노르웨이 작가가 썼다는 이 책의 제목만 보고 내가 이 책에 대한 분위기를 지레짐작 해버렸던 것이 가장 큰 오산이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여느 스웨덴 소설과 같이 유쾌한 풍자와 위트가 넘쳐나는 책일 줄 알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직전에 『이케아, 불편을 팔다』라는 책을 함께 읽기 시작했었다. 왠지 이케아에 대해서 어느정도 정보가 있으면, 소설 속에서 유쾌하게 풍자하는 상황들을 좀 더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근데 왠걸.. 책의 내용은 전혀! 그러한 내용이 아니었다. 


[Review Link]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Review Link] 요나스 요나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Review Link] 프레드릭 배크만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어느정도 유쾌함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실망이 찾아온다. 이 소설은 절대 유쾌하게 읽을 소설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뭔가 공허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처음엔 대체 이 영감님이 왜 이렇게 이케아 사장을 납치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나..하며 그 사연을 알고싶어 읽게 되는데, 어느 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롤드 영감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지역에서 성실하게 평범한 생활을 해 오던 사람의 어찌보면 일대기와 같은 삶의 모습이 회상을 통해서 조금씩 드러난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연과, 평생을 함께 해온 가구점에서의 사연.. 주인공이 떠올리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주인공인 하롤드 영감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엿볼 수 있고, 또 이 영감님의 모습이 비단 주인공 한사람만의 모습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지금 이 세상에도 수많은 하롤드 영감님이 존재할 것이고, 또 각기 다른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낼 것이다. 어찌보면 이케아는 지금의 세대, 지금의 트렌드를 대표하는 상징일 수 있고, 이 이야기는 한 중소도시의 터줏대감인 하롤드 영감의 삶과 이케아의 트렌드가 만나는 세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트렌드는 스타벅스가 될 수도 있고, 롯데마트나 홈플러스, 혹은 유니클로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작은 구멍가게나 카페 혹은 다방, 그리고 동네 작은 옷가게나 속옷가게가 있을 수도 있다. 참 신기한 것이, 처음엔 대체 이 할아버지 뭐야?.. 라며 읽었던 내가, 어느새 이 할아버지와 같이 분노하고, 허탈해하고, 멍해지는 그런 감정들을 겪게된다. 


문체가 참 특이한데, 우선은 대화체에서도 따옴표가 없고, 대화 역시도 간결하게 진행이 된다. 목차나 소제목도 없다. 챕터번호 역시 없다. 정말 통으로 주욱 이어지는 텍스트의 연속이다. 내용을 구분한 것은, 한번씩 쉬어갈 수 있도록 한 줄을 띄워서 단락이 나누어 지는 것을 알려주는 것 뿐이다. 이야기 전개도 현재와 과거 회상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두서없이, 때로는 단락을 구분하지 않은 채로도 왔다갔다 한다. 근데, 정신이 없다기 보다 굉장히 담담하다. 주인공에게 감정이 이입되어서 상실감이 생기고 화가나기도 하는데도, 담담한 서술 때문인지 감정이 최대한 배제되는 느낌이다.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책 대체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혹시나 작가가 쓴 언어 그대로 원서로 읽을 수 있다면 대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의식을 회복한 건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피투성이가 된 채 이마저도 사라져 버린 뒤였다.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워 가게를 닫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의 의료진들은 나를 헤우켈란의 치과로 보냈다. 하지만 빠지고 망가져 버린 이를 되살리기는 힘들었다. 그들은 독일제 틀니를 권했다. 성능이 매우 좋고 실용적이라고 했다. 나는 심장과 뇌가 그대로여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들이 내게 독일제 뇌를 이식하려 했다면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성능이 매우 좋고 실용적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차로 돌아온 뒤 엡바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려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예? 엡바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여인을 떠올려 봐. 예, 그렇게 했어요. 그다음은 그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고 상상해 보렴. 할 수 있니? 예. 그 여인이 바로 마르니야.



나는 다음 날도 병원에서 지냈다. 아버지의 상태가 호전되기를 바랐지만, 결국 아버지가 우리 앞에서 곧 자취를 감출 거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의사의 말에 나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가 하루를 넘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아버지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아버지, 준비되었습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가구점을 지키겠습니다. 할 수 있어요. 바로 그거야. 우린 할 수 있어. 불가능한 일은 없단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나는 아버지의 실수를 고스란히 재현해 온 것 같다. 아무런 변화 없이 가구점을 운영해 온 것이다. 시간과 흐름과 사회의 변화에 눈과 귀를 열어놓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변화와 경쟁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고집스레 제자리만 지키고 서 있다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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