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아낌없이 별 다섯개다.
사실 이 작가는 오베라는 남자의 작가로 먼저 알게 되었는데, 오베는 아직 읽진 못했고, 교보 무료대여로 이 책이 먼저 떴길래 먼저 읽게됐다. 표지도 동화처럼 보이고.. 스웨덴 소설을 읽었을때 느꼈던 특유의 유쾌함을 상상했던 터라.. 딱 그만큼의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소설의 첫 시작도 그랬다. 7살치고는 엄청 특이하고 똘똘한 주인공이 등장하더니, 더 특이한 할머니도 등장한다. 주인공도 매력적이지만, 할머니.. 진짜 완전 완소캐릭터다. 이 할머니는 진짜 슈퍼히어로임에 틀림없다. 내가 줄곧 할머니와 같이 자라와서 그런가? 다가오는게 특히 남달랐고.. 규칙을 중시하고, 어려서부터 엄청 엄하게 키우셨던 우리 할머니라 캐릭터는 완전 정 반대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이기 때문에 통하는 부분이 분명히, 그리고 꽤나 많다.
말투나 톡톡쏘는 매력, 통쾌하게 주위를 골탕먹이는.. 그저 유쾌하게 시작되는 소설이었는데... 뒤로갈수록.. 어라? 이게 아닌데... 하는 순간들이 온다. 할머니의 편지를 전하는 엘사와 그러한 과정을 모험처럼 세팅해 온 할머니..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주인공들 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감동적이다. 동물인 워스마저도.. 아니, 어쩌면 모두가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말투는 여전히 간결하고 경쾌하다. 문제는 후반으로 갈수록, 거의 울면서 읽었다. 뭐냐고... 이런 밝고 귀여운 표지를 가지고 있는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울면서 읽게 되다니... 엄청 감동적이다. 그리고 재미있다. 번역자가 후기를 쓰면서 이 작가 대박이에요! 를 외쳤던 기분을 알 것 같다. 난 이 작가의 팬이 된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일곱 살짜리에겐 슈퍼히어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과에서 검사를 받아보아야 한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사람들을 구하고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게 할머니의 초능력이다. 그래서 살짝 기능장애가 있는 슈퍼 히어로다. 엘사는 위키피디아에서 '기능장애'라는 단어를 찾아봐서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 할머니 세대 사람들은 위키피디아를 '백과사전인데 컴퓨터로 보는 거!'라고 부른다. 엘사는 백과서전을 '위키피디아인데 아날로그식'이라고 부른다. 엘사가 위키피디아와 백과사전 둘 다 찾아봤을 때 '기능장애'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바로 엘사가 할머니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엘사의 귀에 들린 할머니의 마지막 말은 이거다. "모든 일곱 살짜리에겐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 하니까 내가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알리고 싶지 않은 거야, 마르셀. 암 같은거 걸리면 슈퍼 히어로가 아니잖아."
할머니는 "남들과 다른 사람들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평범한 사람은 세상을 코딱지 하나만큼도 바꾼 적이 없다"고.
"아이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 아들들에게 읽어줬던 책이야. 너도 읽었는지 모르겠다. 읽었겠지."
엘사는 고개를 젓고 책을 꽉 끌어안는다.
"아니에요." 엘사는 거짓말을 한다. 책을 선물 받으면 안 읽은 척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 정도의 예의는 갖추고 있다.
"서로 다르지 않을까?"
"어째서요?"
"너희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셨잖아."
"내 기준으로는 안 그래요. 할머니하고 같이 지낸 지 7년밖에 안 됐는걸요. 조금 있으면 8년이지만."
죽음이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게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거다.
"이 '일곱 번째 왕국'은 폐허가 돼버린 미바탈로스하고 위치가 정확하게 일치하네요." 엘사가 속삭인다.
울프하트는 양손을 맞대고 비빈다.
"미바탈로스 위라야 미파르도누스를 건설할 수 있대. 너희 할머니 생각으로는."
"미파르도누스는 뜻이 뭐에요?" 엘사가 워스에게 뺨을 대고 묻는다.
"용서한다."
엘사는 건너편에 있는 동생이 들을 수 있도록 손을 오그려서 유리창에 대고 속삭인다. "무서워할 것 없어, 반쪽아. 이제 누나가 있거든. 좋아질 거야. 전부 다 괜찮아질 거야."
그런 다음 암호로 바꿔서 속삭인다.
"넌를 질투하지 않도록 노력할게. 너를 미치도록 오래전부터 질투했는데 내 친구 중에 알프 아저씨라고 있거든. 남동생이랑 한 백 년째 서로 으르렁거리고 그랬다. 그러니까 우리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 좋아하도록 노력해보자, 알았지?"
"내 아이를 모든 것으로부터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게 부모로서 얼마나 힘든지 아니?"
"아이도 그걸 인정하는 건 힘들어요." 엘사가 이렇게 말하고 아빠의 뺨을 토닥인다. 아빠는 엘사의 손가락을 붙잡는다.
.......
엘사는 아빠의 손바닥에 이마를 대고 속삭인다. "완벽한 아빠가 될 필요는 없어요, 아빠. 하지만 내 아빠라야 해요. 그리고 마침 엄마가 슈퍼 히어로라고 해서 엄마한테 부모노릇을 더 많이 맡겨도 안 되고요."
엘사는 옷장에 들어가서 앉는다. 할머니 냄새가 난다. 집 전체에서 할머니 냄새가 난다. 할머니네 집에는 상당히 특별한 구석이 있다.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그 냄새는 잊지 못할 것이다. 할머니의 마지막 편지가 담긴 봉투에서도 집과 똑같은 냄새가 난다. 담배와 원숭이와 커피와 백합과 세정제와 가죽과 고무와 비누와 알코젤과 단백질 바와 민트와 와인과 코담배와 대팻밥과 먼지와 시나몬번과 담배연기와 스펀지케이크 믹스와 양초 기름과 오보이와 행주와 꿈과 가문비나무와 피자와 멀드 와인과 감자와 머랭과 향수와 땅콩 케이크와 아이스크림과 갓난아이 냄새가 난다. 할머니 냄새가 난다. 가장 좋은 방향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사람의 가장 좋은 냄새가 난다.
봉투에 엘사의 이름이 거의 정자체로 적혀 있다. 할머니는 맞춤법을 틀리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생각대로 잘 되진 않았다.
첫 문장이 이렇다. "주글 수밖에 없어서 미안해."
그리고 그날 엘사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를 용서하기로 한다.
며칠이 지난다. 어쩌면 몇 주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 이후에 다른 특이한 아이들이 하나둘씩 운동장과 복도에서 알렉스와 엘사를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아무도 감히 그들을 상대로 추격전을 벌이지 못할 만큼 특이한 아이들이 많아진다. 대부대가 된다. 특이한 사람들의 숫자가 어느 선을 넘으면 아무도 평범해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겨울이 되자 무슨 증후군을 앓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다. 아이는 코스튬 파티에 공주 옷을 입고 나타났다가 상급반 남학생들이 웃으며 놀리자 울음을 터뜨린다. 그걸 본 엘사와 알렉스가 아이를 주차장으로 데리고 나간다. 엘사의 전화를 받은 아빠가 쇼핑백 한 가득 새 옷을 들고 출동한다.
다시 안으로 들어갔을 때 엘사와 알렉스도 공주 옷을 입고 있다. 스파이더맨 공주다.
그 일이 있을 뒤에 두 사람은 그 아이의 슈퍼 히어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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