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도 참 오랫동안 사놓기만하고 묵혀두었던 책이었는데, 최근에 《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를 읽으면서 급 생각이 나서 꺼내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재미있는 책을 여지껏 왜 안읽고 있었을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책의 소재나 제목이 그러하다보니 꽤 진지하고 무거운 내용을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다보니 이건 완전히 에세이같은 구성이랄까, 저자가 관련 연구를 진행하게 된 과정들을 함께 되짚어가는 듯한 구성이어서 생각보다는 매우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가볍지도 않았다. 분자생물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DNA 연구의 여러가지 방법들, 그리고 고DNA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또 어떠한 시행착오를 거쳐왔는지 꽤 디테일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조금 인상적이었던 것은 개인사를 오픈해서 함께 녹여낸 것이었는데, 동료의 부인과 사랑에 빠져서 결국 결혼에 까지 이르는 사생활 까지 오픈하고 있었다. 물론 그 동료와도 결과적으로는 잘 지내는 매우 쿨한 결론을 도출했지만, 아무리 대중서라고 하더라도 연구관련 소재로 글을 쓰면서 이만큼 오픈을 해도 괜찮은지 읽는 내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어쨌든 그만큼 독자로서는 책이 잘 읽혔고, 또 생각해보니 그만큼 저자에게 있어서 생활의 영역과 연구의 영역이 연결되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사실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큼 유명한 곳이고, 과학계에서 여러 영역에 관련이 되어있기도 하지만 이 고DNA, 게놈, 인류의 진화 등에 관련해서도 굉장히 중요한 연구소 중 하나이다. 또 이 책의 주제 자체가 나의 전공영역과 엄청나게 밀접한 관계가 있다보니 역시 마냥 지나가는 에세이 정도로 읽고 넘어가기에는 쉽지 않았는데, 사실 요즘 쏟아지고 있는 게놈관련 논문들을 어느정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 책에서 나오는 설명이 얼마나 친절했는지 모른다. 많은 부분에 이해가 깊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데니소바인에 관련한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참 인상적이었는데, 사실 작가가 언급하고 있는 2010년, 2011년 언저리에 나도 당시 도쿄과학박물관에서 개최되었던 APA(아시아 구석기학회)를 통해 이 관련발표를 들었다. 당시에는 손가락뼈만으로 정말 우리가 얼마나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형태의 디스커션이 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벌써 10여년이 지난 요즘, 데니소바인은 이미 입지를 굳혔다. 관련 연구자도 여전히 학명을 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여러면에서 그의 시행착오와 선택은 옳았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가 세상에 내놓은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의 유전자가 모두 우리 안에 있다는 이 연구는 관련학계에서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고 그 변화는 현재도 진행중이다. 《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가 고인류학, 고DNA 연구의 최신동향을 알려주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중요한 발견이 어떠한 과정속에서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어떠한 결과를 도출해내었는지 찬찬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관련분야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주저없이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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