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HONG[本]'은 일본어로 '책'이라는 뜻입니다.

Books/Book Review

309동1201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 Mashimaro | 2017. 3. 9. 01:50






어쩌다 페이스북에서 저자가 쓴 글을 발견하고 책을 접하게 됐다. 그런데 그 글은 우연하게도, 이미 저자가 있었던 환경으로부터 떠나기로 결심한 글이었다. 나도 10년이 넘는 오랜기간동안 대학이라는 공간안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박사과정이라는 아주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가 과연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결국은 학교와 연구실을 떠나기까지 결심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읽기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봤을때 다른 상황들도 꽤 있었지만, '인문학'을 전공한 '대학원생'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참 많다. 그는 그 주어진 환경안에서 꽤나 열심히 살았던 것으로 느껴졌고, 특히 2부에 들어가서 시간강사로서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난 참 많은 부분들을 느꼈다. 


지금 저자가 어떠한 선택을 했던지간에, 응원하고싶다. 그리고 조금 더 보람되고,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삶이기를 바란다. 나도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있고, 어쩌면 강의라는 것을 할 기회가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읽으니 정말 남일같지가 않았다. 대학안에서의 노동자의 삶, 연구하는 것과 강의하는 것의 발란스, 과연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꽤 많이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던 것 같다. 연구나 눈문에 지치고, 혹은 뭔가 무기력해질때, 한번씩 꺼내읽게 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런데 논문을 쓴다는 것은 전혀 다른 작업이었다. 이 반복되는 표현들을 어찌해야 할지, 어떠한 수사를 사용해야 할지, 이 단어가 여기에 들어가도 될지, 글쓰기의 기초부터가 흔들렸다. 문단은 커녕 문장 하나를 쓰는 일도 힘들었고, 이 단어가 내가 알던 단어인가, 싶을 만큼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것마저 두려웠다.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교학상장', 가르침과 배움은 함께 성장하는 관계에 있다. 그러니까, 교수자도 학생도 모두 부족한 존재인 것이다. 모두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상대방에게서 채워나가야 한다. 어느 한편이 자신과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거나, 혹은 사유하기를 멈춰버리면 그곳은 더 이상 강의실이라고 할 수 없는 죽은 공간이 될 것이다. 


"여러분은 국문학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결합식을 외울 필요는 없고 원리만 간단히 이해해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저는 카톡을 보내거나 할 때 '봬요'라고 하지 않고 '뵈어요'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뵈요'가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내 주변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소통하려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대학에서 더욱 중요한 지식을 계속 배워나갈 것입니다. 점점 부모님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아질 테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곧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봬요'를 '뵈어요'로 풀어쓰는 것처럼, 배운 것을 활용해 모두와 소통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 주변에서 시작하는 인문학입니다."


교수님의 논문도 검색해주세요, 하는 학생의 요구를 누군가는 무례함이나 당돌함으로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몇 년간 한 편의 논문도 쓰지 않고 강의실에 서는 행위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무례한 것이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존대하는 노동자를 탓하는 대신, 어째서 그러한 시대의 문법이 구축되었는가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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