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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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김중혁 『무엇이든 쓰게 된다』

| Mashimaro | 2018. 6. 9. 21:11






나에게는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늘 있는 것 같다. 사실 어려서부터 글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그리고 특히 독서감상문을 제출하라는 과제를 싫어했었다. 책을 읽는 것은 너무 좋았으나, 그걸 다시 나의 언어로 어떻게 쓰고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이렇게 매번 블로그에 책 리뷰를 적을 정도로 바뀌었다니. 나도 꽤 바뀐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난 글쓰는 것이 어렵다. 글쓰는 것이 어려운 사람인데, 직업상 논문이라는 글을 자주 써야만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블로그에 쓰는 이러한 글은 최대한 스트레스받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쓰는 중이다. 내가 책을 읽고 쓰는 이러한 글을, '서평'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리뷰'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에겐 왠지 '리뷰'라는 표현이 조금 더 가벼운 인상을 주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자 선택했을 때에는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한몫을 하기도 했지만, 이미 구입해둔 스티븐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라든지 히라노 게이치로의 《챍을 읽는 방법》 같은 책들보다 먼저 이 김중혁작가의 책을 읽게 된 것은,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서이다. 그리고 다행히 그 예상은 맞아떨어진 것 같다. 충분히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다행히 김중혁작가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고 쉽게 풀어주었다. 각 챕터나 그림을 이용한 장치들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절반정도는 작가의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소설가의 입장에서의 생활과 생각을 공유해 준 것이다. 심지어 앞 챕터에서는 글쓰기위한 재료들이나 그 이외에 환경들을 소개하는데, 일단 나도 사용하고 있는 툴 들도 참 많았고, 또 일상생활에서의 모습에서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굉장히 많았다. 개인적으로 나도 애용하는 53펜슬과 스크리브너가 등장했을 땐 은근 속으로 열광했다는...ㅎㅎ


어쨌든 소설가의 입장에서 글쓰기의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논문을 쓰는 나에게나 블로그를 쓰는 나에게도 와닿는 부분들이 많았다. 결국에 글쓰기는 생각에 대한 것, 스타일에 대한 것, 사람에 대한 것, 삶에 대한 것... 즉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의 제목인 '무엇이든 쓰게 된다'라는 표현이 참 좋은 것 같다. 결국 27년이나 글을 써왔다는 저자도 창작이라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러한 솔직한 생각들을 풀어준 부분들 때문에 공감가는 내용들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론 김중혁작가의 소설들보다는 이런 에세이류가 더 마음에 든다. 소설가에겐 실례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마감이 없는 날이다. 마감이 없다는 것은...... 써야 할 글이 없다는 뜻이고, 써야 할 글이 없다는 것은...... 오늘은 소설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글을 쓰고 있을 때보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볼 때, 뮤직비디오를 볼 때, 음악을 들을 때, 책을 읽을 때, 만화를 볼 때, 나는 이미 글을 쓰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문자로 찍히지 않을 뿐, 형태가 없는 글을 나는 이미 쓰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글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글이 될 수 있는 덩어리를 채취하는 것이다. 사금을 걸러내는 방식과 비슷하다. 물과 모래를 얇은 접시에 담고 돌리다 보면 가벼운 모래와 흙은 휩쓸려가고, 묵직한 금만 접시에 남게 된다. 계속 돌려야 하는 거다. 계속 돌리면 거기에 글만 남게 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생각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모니터 옆에 붙여두기도 했다. 형광 포스트잇은 눈에 잘 들어온다. 그러나 눈은 그 어떤 것에도 금세 익숙해진다. 거기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분명히 거기에 붙어 있는 걸 알지만 보지 않고서는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은 포스트잇에 붙잡아둘 수 없다. 붙잡아두면 생각은 썩어버린다. 붙여두기만 해서는 생각이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의 포스트잇을 떼어버리고 머릿속의 어딘가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최선을 다할 수 없으므로, 모든 글쓰기의 첫 문장은 대충 쓰는 게 좋다. 어차피 우리는 최선의 문장을 쓸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문장을 쓸 수 없다면 아무 문장이나 쓰면 된다. 위약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골라봤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게 첫 문장이다. 에세이를 쓰든 논문을 쓰든 블로그 글을 쓰든 소설을 쓰든 시를 쓰든 첫 문장은 그렇게 대충 쓰는 게 좋다. 


수전 손택과 인터뷰를 했던 조너선 콧은 그녀를 이렇게 평했다.
내가 인터뷰를 해본 거의 모든 사람과 달랐던 점은 수전이 문장이 아니라 정연하고 여유로운 문단으로 말했다는 사실이다. 
수전 손택은 훌륭한 작가이기도 하지만 뛰어난 인터뷰이이기도 하다. 그녀는 글을 쓰듯이 말했고, 말을 하듯이 글을 썼다. 수전 손택은 문장의 아름다움보다는 논리적인 아름다움을 선택했고, 깔끔한 말보다는 계속 조정되고 조율되는 말투를 사용했다고 한다. 


글은 생각과 마음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지만 생각과 마음은 쉽게 지치며, 쉽게 변질되고, 쉽게 증발한다. 갈수록 글쓰기가 힘들어진다. 


글쓰기는 혼자 해서 좋은 것이지만, 혼자 하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다. 지금 수많은 블로그에서, SNS에서, 책에서, 글쓰기는 자기 합리화의 좋은 도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정확하게 글을 쓰고 싶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다. 말은 맽으면 그만이지만, 글은 발표하기까지 수십 번 수백 번 고칠 수 있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고쳐낼 수 있다. 말에 비해 글은 훨씬 더 전략적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글쓰기 속에선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시기심의 원인은 나의 불안에 있다. 다른 사람들은 매일 노력해서 뭔가 대단한 걸 만들어내는 거 같은데, 나만 멍청하게 가만히 앉아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다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자신만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이드는 트럼보에게 이렇게 말한다.
“글로 써보면 알겠지.”

작가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어떤 이야기든 말로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 써보면 알게 된다. 뒤집어 말하면, 써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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