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지는 책은 처음이다. 읽으며 피식거리게 되기도 하고, 슬그머니 미소짓게도 되고... 저자가 시인이라서 그런가? 역시 표현이 남다르다.
사실 난 야구를 좋아한다. 서울 출신이고, 아무런 연고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화이글스의 팬이다. 어렸을때 빙그레이글스를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 이유없이. 그냥 장종훈이 좋았나? 아무튼, 그 덕에 지금도 야구를 즐겨보고 있다. 근데, 제목을 보고 도대체 이 책의 정체는 뭐지?라는 의문으로부터 책을 접하기 시작했다. 읽는 내내 작가의 야구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고, 또 그것을 자신에게 투영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다. 그냥 이 사람은 야구 자체가 자신의 인생이구나..라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것은 역시 시인 서효인의 문체이다. 간결하면서도 임팩트있는.. 그리고 문장의 앞뒤를 바꿔가며 툭툭 던져서 시크한 감동을 주는 그 문체가 참 매력적이다. 내 캐릭터로는 절대 쓸 수 없는 그런 문장이라고나 할까?
읽는 내내, 이사람 참 평범하고, 그리고 평범하기에 응원하고 싶어진다. 난 시를 잘 몰라서 시집은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이런 시인이라면, 용기내어 읽어봐도 될 것 같기도 하다. 산문집인데, 시의 매력을 알려주는 책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대놓고 행복을 어필하는 책은 아닌데, 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했던 것 같다.
겨우 모은 돈으로 번듯하게 사놓은 집을 허망하게 팔아버린 할아버지(노름이나 여자 때문이었을 것이다). 겨우 모은 돈으로 대학 간다며 서울로 가더니 대학은커녕 빈손으로 돌아와 집에서 뒹굴던 아들(친구나 유흥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바탕 이야기가 끝나면 할머니는 그 둘을 꼭 닮은 나에게 밥을 차려주거나, 주전부리를 주었다. 할머니의 주된 대사는 항시 비슷하다. 밥 먹었냐. 밥 먹어라, 꼭 밥은 먹어라.
광포한 무리들에 맞선 지금, 우리는 벤치클리어링 하러 간다.
당신과 나의 동해 바다 같은 오지랖으로 펼쳐진 위아래 없는 연대의식.
이를 줄여서 '벤치클리어링'이라고 부른다.
두 번까지는 스트라이크 카운트라는 벌칙을 받고, 세 번부터는 무한대로 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이상한 규칙. 야구에서의 파울은 기회의 영속성을 의미한다. 대부분 방망이에 제대로 맞히지 못한 타구이지만, 그것이 규격 바깥으로 나가버렸으므로, 타자는 한 번만 더,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갖는다. 당신이 살거나, 죽을 때까지.
살면서 결정적 기회는 단 세 번 온다고 했던가. 아님 사나이는 딱 세 번 울어야 한다고 했던가. 재수는 해도 삼수는 하지 말라고 했던가. 가위바위보는 삼세판이라고 했던가. 무엇이든 세 번은 너무 적다. 우리는 분명히 훈련 받은 대로, 혹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쳤고, 운이 좋지 않았는지 아님, 신이 외면했는지 제대로 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잡히지도 않았잖아?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자.
......
"당신도 나도 아직 죽지 않았어. 그러니까 힘내."
이런 말을 줄여서 '파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오로지 당신에게 집중해야 할 시간이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전부가 그러할지도 모른다. 주위의 기대는 잊어라. 안타는 맞겠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게임. 나 자신만 바라보자.
결국 실패하겠지만, 다음 등판이 남아있다. 실패의 예정, 그리고 도전.
사는 것 자체가 '퍼펙트게임'이니까.
본헤드 플레이가 없는 야구는 있을 수 없다. 그들도 실수를 한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더 희귀한 일이다. 그가 실수했을 때, 그는 선수가 아닌 한 인간이 된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그에게 동물의 이름을 붙이며 욕을 하지는 않는 게 좋다.
술을 먹고 실수하는 당신과 나와 또 다른 당신은 인간이라는 종의 연약한 면모를 아주 잘 보여주는 일종의 연합체이다. '개 됐다'라는 말은 삼가자. 그의 본헤드 플레이를 본 우리가 욱하는 마음에 '개XX'라고 칭한 야구선수는 지금 막심한 후회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멍청한 행동은 앞으로 다시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실수가 완전히 없어지진 않겠지.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니까.
너무나 인간적인 그. 격려와 욕석의 회오리 속에 있는 사람. 이를 줄여서 '본헤드'라고 부르자.
이런 사내들도 있다. 어설프게 큰 스윙 휘두르면서, 공공장소에서 큰소리치면서, 욕 잘하는 걸 자랑으로 알면서 부인이나 애인을 때리면서,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면서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들. 마초라고 하기에도 낯 뜨거운 그들은 번트를 댈 줄 모를 것이다.
번트는 공을 달래야 한다. 자신을 숙여야 한다. 주자를 살려야 한다. 파울라인을 살펴야 한다. 주위를 배려해야 한다. 조용하면서 굳건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껴야 한다. 세상을 두루두루 살펴야 한다.
그걸 줄여서 '번트'라고 한다.
우리는 성급한 억울함으로 폭투를 던지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짜증과 울분으로 악송구를 던질 것이다. 과장된 포즈와 욕망으로 헛스윙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오래된 정성으로 갈고 다듬어진 시간 속에서 존재함을 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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