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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김영훈 『노력의 배신』

| Mashimaro | 2023. 11. 8. 13:21

 
 

 
 
 
처음에는 무심고 발견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내가 이정도로 빠져서 열심히 읽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제목부터가 굉장히 강렬하기도 하지만, 사실 묘하게 반골기질이 있는 나로서는 이런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책들이 얼마나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예상이 보기좋게 빗나갔으니.. 굉장히 많은 포인트에서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이거 엄청 좋은 책이네…”를 중얼거리며 책을 덮기에 이르렀다는…ㅎㅎ

이 책에서 저자는 동양지역, 특히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여러가지 예를 들면서, '노력 신봉 공화국'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게 좀 쎈 단어이긴 하지만 굉장히 공감이 되는 단어이기도 했다. 사실 초반에 이 책을 읽다보면 노력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노력을 이정도로 부정하는 건가..라고 오해할 수도 있으나, 저자는 노력이라는 행위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단, 우리가 모든 것을 ‘노력’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즉, 어떤 문제는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고, 또는 환경적인 원인으로 야기된 문제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것의 책임을 모두 개인의 노력문제로 치환해 버린다는 것이다.

거기다 개인의 스케일을 통해서 보아도, 개인의 기질이나 능력, 재능에 따라서 잘 할 수 있는 것들이 각자 다른데, 우리는 이 조건들을 최대한 무시하고 같은 선상에서의 노력을 강조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이것을 공평하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우리가 정의하는 노력이라는 행위를 거치지 않는 것이라면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보다 재능이나 능력, 기질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많고, 더 중요한 것은 노력할 수 있는 것 조차도 재능이라는 점이다. 결국 내가 힘내서 노력할 수 있는 영역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읽으면서 얼마나 공감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모두 암묵적으로 묻어두고, 다들 이미 알고 있음에도 쉬쉬하며 우리들 자신을 이 사회시스템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결국 저자는 우리가 개인의 노력문제로 모든것을 치환하지 말고 구조적으로, 함께.. 이러한 문제들과 마주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비단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네 마네..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가 어떤 부분에서 현재 오류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이러한 문제를 접해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신에게 맞는 분야와 상황 속에서, 즐겁게 혹은 성취감을 느끼면서 노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을 강조하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못 바꾸니 세상이 변해야 한다는 서양 사람들의 믿음이 동양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사회 변화에 대해 진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노력하기 싫은 사람들의 핑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세상이 변하지 않으니 내가 변해야 한다는 동양 사람들의 믿음이 서양 사람들에게 의아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개인의 책임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사회적 변화에 대한 나약하고 비겁한 태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사건・사고의 책임을 사회 구조나 환경보다 개인에게 훨씬 더 많이 묻는다. 언론도 그렇다. 사건 당사자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왜일까? 모든 문제는 사람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사건이 터지면 우리 사회는 신상 털기부터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의 이력들, 부모와 형제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공개되어버린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내용은 딱 하나다. 이 사람이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것이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이런 태도가 시민들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 나쁜 사람을 강하게 처벌해야만 다른 사람들이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리해보면 타고난 재능과 상관없이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 노력을 적게 하는 사람보다 항상 성과가 더 높다. 노력의 주효과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노력의 힘을 믿는 이유이며, 많은 연구에서 밝혀진 공공연한 사실이다.

앞서 ‘재능-노력 연관성’ 개념에서 설명했듯이 타고난 재능이 높은 친구는 그렇지 않은 친구에 비해 현실에서 훨씬 더 열심히 노력한다. 그래서 타고난 재능이 낮은 친구가 노력해서 타고난 재능이 높은 친구를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재능이 노력을 압승하는 두 번째 이유는 노력의 효과가 재능이 높은 사람에게서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노력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이 장의 목적이 아니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과도하게 노력을 유일신으로 숭배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이런 신념과 믿음이 우리 사회를 더욱더 병들게 할 수 있고, 사회 구성원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엔절라 더크워스 교수는 본인이 직접 수행한 연구와 주변의 예시를 이용해 성공을 ‘끝까지 해내는 것’으로 정의했다.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면 그런 이야기를 듣는 자녀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싶지 않을까? 이 세상 누가 공부를 잘하고 싶지 않겠는가. 모두 다 열심히 노력해서 공부를 잘하고 싶을 것이다. 부모의 마음보다 더 간절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마음일 뿐이다. 진짜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행동으로 노력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력은 그냥 쉽게 변하지 않는 성실함의 다른 표현일 뿐이고 재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면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학생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데 가장 노력을 많이 한 학생이 뽑히는 구조가 아니다. 가장 실력이 출중한 학생이 뽑히는 것이다. 학교 입시에만 해당하는 규칙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는 대부분 경쟁을 기초로 한다.

노력이 성공의 유일신일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경쟁에서 이겨야 성공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공은 경쟁에서 이겼을 때 의미가 생긴다.

모두 똑같이 열심히 노력하면 경쟁력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험 결과로 아파하고 신음하며 인생을 비관하는 학생들이 더 많아질 뿐이라는 사실이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노력할수록 아픔의 크기가 커지는 말도 안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이 노력 신봉 공화국의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그래서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노력은 가치를 잃어버리고, 실패로 인한 우리의 고통은 더 커진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 노력 말고 무엇으로 성공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는 머리가 좋아서 합격한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합격생이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우리는 노력으로 성공하는 나라에 살고 있고, 그런 나라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노력이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면 절대 안 되는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노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능이 노력을 압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력한다고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쟁이라는 현실을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이런 태도와 행동은 역설적으로 노력의 힘을 무력화한다. 다 같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때문에 노력이 설 자리가 없다. 그 자리를 재능이라는 놈이 장악해버린다. 노력이라는 놈은 죽을 고생만 하는 꼴이다. 

노력의 한계가 경쟁이라는 현실 때문에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다. 더 큰 한계는 시간의 제한이다.

타고난 재능과 능력, 타고난 성실성과 끈기, 좋은 집안과 환경 같은 조건들이 없었다면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세상 누구도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이 이렇다면 나의 성공은 명분이 없다. 이 세 가지 조건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주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

많은 사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를 돈과 권력 그리고 명계를 가진 사람들은 겸손해야 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문장은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신분에 따른 각종 혜택을 받는 만큼’이다. 이 부분을 놓치면 안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신분에 따른 각종 혜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봉사와 섬김의 자세로 살면 그것은 칭찬해야 할 일이 아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우리의 성공도 다를 바 없다. 타고난 재능과 주어진 환경으로 혜택을 본 것뿐이다.

성공했다면 타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성공했을 때 거만하지 않고 겸손한 사람을 찾기도 어렵지만,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가 정의로운 사람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당신이 성공했다면 실패한 사람들이 어떻게 보일까?

안타까워하고 불쌍히 여기는 태도 역시 교만이다. 교만한 태도를 보이려면 적어도 당신이 이룬 성공에 대한 명분과 정당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 모두 명분과 정당성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근원적인 측면에서 운을 제외하고는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공한 사람이 실패한 사람에게 갑질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성공과 실패의 여부가 개인의 선태과 의지로 결정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면, 이제 우리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성공이 불어온 권력과 돈에 구실을 만들어주고, 실패가 불러온 참혹한 현실에 명분만 더할 뿐이다. 사회적 책임이 더 중요한 이유는 한 개인의 성공이 타고난 재능, 자기조절 능력에서 비롯한 노력 외에도 사회의 환경과 구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어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건 모두가 본인의 재능을 활용해 잘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더는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타인을 거칠게 다루지 않으면 좋겠다. 타고나는 것들과 주어지는 환경을 서로 인정하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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