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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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박정민 『쓸 만한 인간』

| Mashimaro | 2022. 6. 29. 18:32

 
 

 
 
 

정말 예전부터 리스트에는 있었는데 꽤 오랜시간을 지나서야 읽게 된 책인 것 같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씩 들어왔었고, 단지 읽고싶다는 기분이 특별히 동하지 않아서 묵혀두었는데, 친구의 추천 덕분에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오디오북을 더 추천한다. 나야 병행해서 같이 읽기는 했지만, 밀리의 서재에서 제공하는 오디오북을 통해서 듣기도 했다. 굳이굳이 오디오북을 추천하는 이유는 작가가 직접 녹음을 했기 때문인데, 사실 지금까지 작가가 직접 녹음한 오디오북을 몇권 읽어봤지만, 단연 가장 추천하는 작품은 이 책이 되시겠다. 
 
아무래도 저자가 배우이다보니, 오디오북 안에서 어느새 연기를 하고 있다. 심지어 시작은 매우 잔잔한 목소리로 읽기 시작하는데, 중간중간의 포인트에서 연기가 튀어나온다. 아니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니 굳이 연기도 아니려나? 어쨌든 이만큼 작가의 의도가 잘 반영된 오디오북은 더이상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저자의 달란트로 인해 오디오북이 풍성해진 것은 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 인간 박정민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꽤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본인의 생각, 본인의 감정들을 꽤 고스란히 전달해주는 느낌이었고, 생각보다 눈치보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이런게 정말 에세이라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뭐 저자는 또 책을 내지는 않을 것 같다고는 했지만, 만약 다음책이 또 나온다면, 그 이후의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하는 마음을 찾아읽게 되지 않을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진부한 말일지 몰라도, 중요한 건 상이 아니고 상을 받아도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것일 테다. 만 원 남짓한, 그 피땀 흘려 번 돈을 내고 영화관에 들어오는 관객들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배우가 되는 것일 테다. 진실된 눈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는 것. 마치 양조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찌질하다의 반대말이 뭔가. 특별하다? 잘나간다? 바지통 6반으로 줄이고 머리에 젤 바르는 상남자스타일? 아니,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찌질했었다. 라고 할 수 있겠다. 모두, 행복하시라. 
 
어쨌든 지금 서로 다른 목적으로 열심히 남의 돈을 버는 20대가 많을 것이다. 그들을 고용하는 이들에게 부탁드린다. 부디 그 20대의 고귀한 능력을 쉽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은 30대에 빛나기 위해 20대에 5천 원이 겨우 넘는 시급과 타협하는 거다. 결코 그들의 능력이 시급 5천 원 짜리가 아니란 걸 알아두었으면 한다. 결코 그들을 찍으며 간단하게 가격이 매겨지는 바코드로 생각하지 마시길 바란다. 그들이 바코드밖에 못 찍어서 바코드를 찍고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2019년 기준으로 최저시급은 8,350원이다. 열정페이 같은 소리는 하지도 마라.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겠습니다.' 한강 다리 위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에 붙어있는 문구다. 가장 절박한 순간에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생면부지의 수화기 너머 상담원이라니 참 슬프다. 동시에 가장 절박할 때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이기도 하다. 어쩌면 아무에게도 전달할 수 없는 이야기라면 얼굴도 모르는 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그들은 "젠장, 무슨 그딴 일이 있어. 술이나 먹자 나와."라고 하지 않는다. "그랬군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해준다. 죽지 말라거나 살아야 한다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냥 들어준다.'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나도 모르게 '다음을 듣고 맞는 것을 고르시오.'식의 듣기 평가를 하고 있다. 듣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맞는 것을 고르는 게 중요해졌다. 어쩌다 틀리면 꾸중을 듣고,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시대에서 맞는 것을 고르는 데 혈안이 되어버렸다. 그저 들어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러다가 오히려 틀린 답을 말하는 바람에 상대는 더 힘들고 죄스러운 감정이 부풀린다. "나 어제 술먹다가 부장이랑 맞짱 떴어." "그 부장이 개새끼네!" 처럼 말이다. 설사, "그건 네가 참았어야지. 네가 맨날 지각하고 핸드폰 하니까 부장이 그러지." 라고 맞는 답을 말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그저, "..."의 침묵과 "그랬구나. 가끔은 그럴 수 있어."의 동의가 필요한 순간인데 말이다. 
 
"당신의 꿈은 최고의 마이너리거인가요?" 개소리다. 마이너리거의 꿈은 걸출한 메이저리거지 최고의 마이너리거가 아니다
 
마이너리거가 'Minor'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인 '별로 중요하지 않은'으로 해석돼선 안 된다. 비단 야구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속한 모든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사회의 다수인 마이너들이 허약하면 그 사회도 그만큼 허약해진다. 1군과 2군의 교집합이 넓을 때 그 팀은 강팀이 되는 거다. 1군의 부상 선수 대신 올라온 2군 선수의 실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팀은 강해진다. 그리고 그 2군 선수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1군에 붙어 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테고, 에라 모르겠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주전 선수까지 돼보고 싶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타이틀도 얻고 싶을 것이고, 그러다가 메이저리그도 가보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도 관심 없던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팀과 그 기회를 잡은 선수, 그렇게 팀과 선수는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려 애쓴다. 그게 좋은 팀이고 좋은 사회다. 
 
하지만 그 전에 알려주고 싶었다. 당신들이 중요하지 않아서 마이너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난 알고 있다. 당신들의 꿈은 '일 XX 잘해서 맨날 야근하고도 자부심 쩌는 대리'일 리 없다. 나는 알고 있다. 당신은 '가끔씩 직원들 야근 시켜놓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는 일 XX 잘하는 부장' 정도는 거뜬히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알고 있다. '어느 날 길 가는 노인의 짐을 들어드렸는데 알고 보니 회장님. 고속승진 고고.'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는. 알고있다. 당신은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모르는 세상이 참 많다. 백발의 할아버지들이 카페테라스에서 커피를 드시고 계신다. 그때 또 다른 백발의 할아버지가 그 앞을 지나간다. 무리 중 한 분이 그분에게 "야! 너 죽었다고 들었는데 아직 안 죽었네!?" 소리치신다. '이 정도면 백 프로 현피!"하는 생각과 함께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로 조심스레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그저 "누가 그래. 허허." 하시며 가던 길을 가신다. 5분 전에 바로 앞에서 일어난 어르신들의 이 짧은 대화도 나는 도저히 모르겠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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