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을 읽고 연관이 있는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이 책까지 단숨에 읽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여기 도서관에도 한국어책들이 어느정도 들어와 있는데, 도서관에 있길래 종이책으로 빌려볼 수 있었다. 《심판》이 짧고 간결하게 임팩터를 전달해주는 희곡이었다고 한다면, 《죽음》은 그의 소설 특유의 느낌이 살아있었다. 읽는 내내 베르베르는 역시 이야기꾼이라고 느꼈고, 그 덕에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 역시 그동안 베르베르가 가지고 있거나 써왔던 세계관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뤄왔던 소재들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그의 책 자체를 아예 인용해서 쓰기도 한다. 아마도 《타나토노트》에서 시작하는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심판》에서도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주로 사용하는 매개체인 고양이에 대한 등장신들도 그러하다. 《심판》에서와 통하는 설정도 있었고, 그보다는 조금 더 디테일하고 마니악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읽으면서 한가지 개인적으로 우려스러웠던 것은, 아무래도 사후세계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떠돌이영혼에 대한 것이나 죽음에 대한 무게감 혹은 두려움이 많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소설 속의 설정에 빠질수록 뭔가 겁이 없어지는 느낌이랄까? 이러한 것이 아무래도 픽션의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겠지만, 영매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영혼에 대한 설정, 심지어 주인공 웰스가 죽게된 이유마저도 어찌보면 황당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어의없다가도 설정에 납득이 가기도 하는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면서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한다면, 떠돌이 영혼들 중에 유명한 작가나 과학자, 배우 등 유명인들이 은근슬쩍 계속 등장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작가에 대한 등장이 가장 많아서, 은근하게 디스하기도 하고, 또 베르베르가 설정한 재미있는 캐릭터 덕에 피식피식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그런 매력도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을 구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면 그건 대단한 오만이에요. 그러니까 당신들이 닿을 수 없는 세상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소꿉놀이하듯 사소한 정의를 구현하려는 짓은 이제 그만둬요. 인간은 자신의 어두운 면과 맞부닥뜨려 봐야 비로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질러 봐야 고칠 수 있는 거에요. 단시간에 변혁을 이루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작은 변화와 성과를 소중히 여겨요. 진화는 덜컹거리고 요동치면서 서서히 이루어지는 거니까. 당신들 위에 있는 상부를 믿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은 해야겠지만 절대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세계가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데는 모종의 숨겨진 의도가 있으리라는 걸 기억하라는 말이에요. 실수 없이 앎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해요. 경험은 오랜 시간에 걸쳐 퇴적물처럼 쌓이는 거죠. 우리는 누구나 경험을 해봐야 해요. 그리고 나서 그 경험의 결과물을 확인해야 비로소 행동을 바꿔야겠다는 자각이 오죠. 그래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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