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배를 엮다》는 이미 몇년도 전에 일본어 버전으로 읽기 시작했던 책이다. 원서로 읽다보니 굉장히 느긋하게 읽었던 것 같고, 방치를 하다가 다시 꺼내읽다가 다시 방치해두다가 하기를 반복했던 책이다. 재미는 있었으나 아무래도 내 일본어 실력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전을 만드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꼭 일본어로 계속 읽고싶었다. 그랬는데, 이곳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몇 안되는 한글책 중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반가운 마음에 집어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이렇게 술술 잘 읽히는 책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아마 하루인가 이틀 걸려서 단숨에 읽어버렸던 것 같다.
사실 읽기 시작하면서도 역시 번역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무래도 사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 미묘한 뉘앙스에 대한 설명이나 정확한 뜻풀이에 대해서 한글로 풀어서 소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아마 실제로 역자가 굉장히 고생하지 않았을까 예상한다. 하지만 역시 프로는 프로인가보다. 꽤나 깔끔하게 그러면서도 정보가 누락되지 않도록 번역에 최선을 다해 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글판으로 읽으면서 오히려 좋았던 점은, 원서에서 많이 놓치면서 넘어갔던 등장인물들의 감정선들이 조금 더 잘 이해되었던 점이다. 아무래도 내가 한국어 네이티브여서 그런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사전에 대한 이야기 낱말에 대한 에피소드를 읽을 때면, 일본어 원서로 읽으면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또 있다. 그래서 이 책을 한국어판으로 다 읽은 기념으로 원서를 다시 꺼내서 이어서 읽고 있다. 확실히 스토리가 이미 딱 잡혀있다보니, 원서를 읽는 속도도 빨라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책을 덮으면서 꽤나 감동적인 스토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원서를 읽으면서 또 미묘하게 다른 느낌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해서 오히려 기대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
아무리 말을 모으고 뜻풀이를 하고 정의를 내려도 사전에 진정한 의미의 완성은 없다. 한 권의 사전으로 정리했다고 생각한 순간, 말은 다시 꿈틀거리며 빠져나가서 형태를 바꿔 버린다. 사전 만들기에 참여한 이들의 노력과 열정을 가볍게 비웃으며, 한 번 더 잡아 보시지 하고 도발하듯이.
마지메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끊임없이 운동하는 언어가 지니고 있는 방대한 열량이 한순간에 보여 주는 사물의 모습을 보다 정확하게 건져 내 문자로 옮기는 일이다.
"말이란, 말을 다루는 사전이란, 개인과 권력, 내적 자유와 공적 지배의 틈새라는 항상 위험한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설령 자금이 쪼들리더라도 국가가 아닌 출판사가, 일반인인 당신이나 내가, 꾸준히 사전을 만들어 온 현 상황에 긍지를 가집시다. 반평생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세월, 사전 만들기에 힘을 써 왔지만, 지금 새삼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말은, 말을 낳는 마음은 권위나 권력과는 전혀 무연한 자유로운 것입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자유로운 항해를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엮은 배. 《대도해》가 그런 사전이 되도록 계속해서 마음을 다잡고 마무리해 나갑시다."
말은 때로 무력하다. 아라키나 선생의 부인이 아무리 불러도 선생의 생명을 이 세상에 붙들어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고 마지메는 생각한다. 선생의 모든 것을 잃어 버린 것은 아니다. 말이 있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것이 우리들 마음속에 남았다.
'♡공감'과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
'Books > Book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쓰메 소세키 『마음』 (0) | 2022.05.12 |
---|---|
허버트 조지 웰스 『투명 인간』 (0) | 2022.05.11 |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0) | 2022.04.30 |
우은진, 정충원, 조혜란 『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 (0) | 2022.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