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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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

| Mashimaro | 2017. 3. 13. 02:30







톰 소여의 모험이라고 하면, 책을 읽었던 기억보다 어렸을 적 애니메이션으로 보았던 것 같은 기억이 크다.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친구인 허클베리 핀과 악역으로 나오는 인디언 조, 그리고 미시시피강.. 정도일 것 같다. 이 책을 30대가 되어서 제대로 읽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다 읽고 보니, 읽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인 톰은 정말 피곤할정도의 개구쟁이로, 좋게 말해서 개구쟁이이지 사실 내 동생이거나 내가 폴리 이모였다면 정말 몇 대 쥐어박고 싶은 녀석이다. 하지만, 또 이렇게 제3자의 입장에서 톰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어쩌면 부러운 면이 참 많은 녀석이기도 하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저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또 절대 저렇게 용기를 낼 수 없겠지..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가장 부러운 점이라고 한다면, 그의 임기응변이라고 할까? 상황에 대처해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사실 단순한 임기응변이라기 보다, 이친구는 주인공으로 타고난 아이가 아닌가 싶다. 친구들을 끌어가는 리더쉽이나, 상황에 따라서 친구들이나 주위사람들을 이용(?)해가는 능력이 대단하다. 이는 이 소설의 화자를 통해서도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있고, 주인공인 톰이 목적을 갖고 시도해서 성공했다는 투로 진행이 된다. 


이처럼 이 소설의 또 하나의 매력은 적극적인 화자의 개입인데, 이 화자의 개입 때문에 이 소설이 아동소설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게 만든다. 특히,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꽤 비판적은 멘트들이 이건 아동소설이 아닐수도 있다는 의문을 자꾸 갖게 만든다. 아마도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은 부분들은 대부분 이러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어렸을 적 이 소설을 읽었다면, 그저 지루하게 느끼면서 스킵했을 부분이지만, 어른이 되어 읽다보니 이러한 부분들이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나름 긴장감이 대단하다. 사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도 많이 느끼지 못했던 긴박감과 집중력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 같다. 마치 어린시절 인디언 조를 보면서 가슴졸이던 그 느낌이 되살아나서, 내가 톰이 된 것 처럼 긴장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아마도 자유분방한 톰을 따라가다 보니, 평소엔 내가 경험하고싶지 않은 상황들을 맞닥드려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단지 조금 아쉬운 건, 인디언 조를 대표적인 악인으로 그리다보니, 내 어린시절만 생각해봐도 인디언에 대한 아주 안좋은 이미지가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문득 생각해보니, 바로 전에 읽었던 실러의 '도적떼'에서 카를이 추구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보다, 오히려 톰이 훨씬 고단수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음.. 이 책을 다 읽고나니, 다음번엔 당연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어야만 할 것 같다. 





톰이 만일 이 책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위대하고 현명한 철학자였다면, 누군가 이 세상에서 꼭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일이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은 놀이라는 사실을 이제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째서 조화를 만들거나 디딜방아를 돌리는 것은 일이고, 열 개의 볼링 핀을 굴리거나 몽블랑 산에 올라가는 것은 놀이에 불과한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들 작문에는 공통적으로 우울증을 미화하고 지나치게 떠받드는 경향이 있었다. 또 '미사여구'를 무분별하게 남발하고 특별히 아끼는 단어나 어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했다. 글을 망치는 요소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모두가 하나같이 온전하지도 못한 말미에 가서 고질적으로 참기 힘든 교훈을 덧붙인다는 사실이었다. 주제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머리를 쥐어짜고 글을 비틀어서라도 어떻게든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심성으로 교화를 되새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교훈이 제아무리 위선적이고 속이 들여다보인다 할지라도 학교에서 이 유행을 내쫓기에는 불충분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고 세계가 존속하는 한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나라의 어느 학교를 가든 자기 작문 끝에 교훈을 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여학생은 없다. 또한 학교에서도 가장 경박하고 신앙심이 희박한 여학생일수록 앞뒤 가리지 않고 가장 거룩하고 가장 긴 교훈을 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쯤 해두자. 조미료를 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란 맛이 없는 법이니까.



이 악몽은 원고만도 대략 열 장이나 되는 데닫가 장로교가 아닌 사람들이 품을 만한 온갖 희망들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교훈으로 끝을 맺는 바람에 1등상을 받았다. 이 글은 이날 밤 최고의 작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톰은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터. 이제는 술도 욕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제 술도 욕도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죽도록 하고 싶던 마음이 싹 사라진 것이었다.



그 물방울은 피라미드가 막 신축되었을 때도 떨어졌을 것이고, 트로이가 멸망했을 때도, 로마가 초석을 놓았을 때도,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도, 정복왕 윌리엄 1세가 대영제국을 일으켰을 때도, 콜럼버스가 바다를 항해하던 때도, 렉싱턴 대학살이 최신 뉴스이던 때도 변함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물방울은 지금도 떨어지고 있고 이 모든 일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가라앉아 희미한 전설로 남았다가 망각의 깊은 어둠으로 사라질 때에도 똑똑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그렇게 살아가, 허크."



간단히 말해 톰은 그리 성숙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자신이 감독하는 무대에서만큼은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존 실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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