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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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 Mashimaro | 2017. 3. 28. 23:16







작년에 1년대여를 했던 책들의 공격이 슬슬 시작되고 있다. 기한은 대부분 여름즈음까지가 많지만, 몰아서 읽으려면 그때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왠만하면 1년대여로 빌린 책들을 하나씩 우선적으로 읽으려고 하고 있다. 이 책도 그 중에 하나인데, 작년에 내가 '글쓰기'에 대한 부분에 꽤나 관심이 있었나보다. 아무래도 논문을 쓰는 중이라서 그런가, 관련된 책들이 몇권씩 있더라. 그 중에서 먼저 손이 가는 한 권을 집었는데 그 책이 바로 이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현재 일반인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인데, 글쓰기에 대한 어떠한 전공을 한 사람은 아니다. 본인 부터가 한사람의 평범한 사람으로서, 또 주부로서 그 입장에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칭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 안에서도 잰체하지 않고 일상과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글쓰기 모임에서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부분들과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들도 전문 작가나 기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읽는 내내 부담스럽지가 않다. 뭐라고 할까, 독자에게 친절하다고나 할까? 글쓰기라는 것에 어느정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그런 느낌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글쓰기' 라기보다 '삶'을 이야기 한다. '글'이라는 것이 정말 많은 것들을 표현해내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소재도 필요하고, 생각을 해야하고, 또 경험이 필요하다. 머리가 좋아서, 혹은 문장력이 좋아서, 또는 어휘를 많이 알고 있어서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다. 소위 문장력이라는 것 조차도 어떠한 룰이나 매뉴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경험을 통해서 그것이 풍부해지고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강하게 다가왔다. 소재 자체가 글이 되는 경우도 있고, 상황과 경험 자체가 문장력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이게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이었다. '글'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글이 나타내고자 하는 목적이고, 또 그 글이 끼치게 되는 영향력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인 주제(?)에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르포가 무엇인지, 소설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터뷰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를 모두 '삶'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책은 정말로 술술 읽힐정도로 쉬운 문체로 쓰여있는데, 생각보다 오래 남는 책이다. 지금 후기를 쓰면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왜 이책을 구매하지않고 대여를 했을까하는 후회도 잠깐 했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독서모임을 할때 책을 '읽는'것과 '쓰는'것을 함께 하라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독서를 좋아하고, 그러다보니 주위에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고, 또한 독서모임도 해보곤 했었다. 대부분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읽기와 쓰기를 함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독후감정도는 쓰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책을 읽고 나름의 기록을 남기는 것은 진짜 도움이 많이 되고 있기는 하다. '쓰기'를 통해서 나름의 결과물을 하나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읽기'만큼에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이 굉장히 와 닿았다. 나 역시 글쓰기에 대해서 어느정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나는 글쓰기에 달란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만큼, 조금이라도 나름의 쓰기 결과물을 만들어보는 연습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생각이 들 만큼 이 책은 무언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글쓰기에 문턱을 조금은 낮춰준 것 같아서 참 고마운 책이다.  





키워드 글쓰기의 핵심은 '삶에 기반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청춘이라 어떻게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나의 청춘은 어떠했다는, 있는 그대로의 해석 작업이다. 


내가 쓰는 언어를 보자. 그간 읽었던 책, 접했던 언론, 살았던 가족, 만났던 애인, 놀았던 친구의 말의 총합이다. 


한 개인의 사생활도 어떤 사람, 어떤 사물, 어떤 장소에 대한 기억이다. 남의 경험이 내 경험에 들어 있듯, 내 경험도 남의 경험에 연루되어 있다. 글쓰기에서 공과 사라는 영역은 그렇게 서로 유동하고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 삶이란 '타자에게 빚진 삶'의 줄임말이고, 나의 경험이란 '나를 아는 모든 나와 나를 모르는 모든 나의 합작품'인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다. 하나는 기분이 삼삼해지는 일이고 하나는 몸이 축나는 일이다. 주변에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글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느껴져도 자기 능력에서 출발하기. 일단 써봐야 어디까지 표현이 가능한지, 어디가 약한지, 어디가 좋은지 볼 수 있다. 글쓰기 초기 과정은 '질'보다 '양'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거의 다' 좋은 책을 읽었다. 읽기와 쓰기는 다른 행위지만 내용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읽기가 밑거름이 되어 쓰기가 잎을 틔운다. 책을 읽어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어지고 사람을 이해하는 눈을 키운다. 세상은 어떤 것이구나 통찰을 얻는다. 모국어의 선용과 조탁, 표현력을 배운다. 좋은 문체에 대한 감을 잡는 것인데, 총체적으로 글을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렇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 한 학인이 써온 글이다. "아우슈비츠를 세운 건 괴물이 아니라 학문과 예술을 사랑한 보통의 독일인이었다. 그러므로 아우슈비츠는 언제 어디서나 생겨날 수 있다. 때로 우리 집도 아우슈비츠가 된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따지는 아이에게 '엄마 방식을 따르지 않으려면 딴 데 가서 살아'라고 말하는 나. '이곳에 이유 같은 건 없어'라고 말하는 수용소 감독자의 말과 똑같지 않은가."


남의 속내를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추측한다. 누구나 자기 렌즈로 세상을 본다. 눈물이라는 렌즈로 보아야 타인의 눈물이 보인다. 내가 외로워야 남의 외로움도 눈에 든다. 언젠가 나는 길 가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다. 남들이 나를 보는 것 같아 창피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전화를 끊을 수도 없었다. 그 뒤로 길가에서 눈물 지으며 통화하는 사람들이 가끔 보인다. 기형도의 시구대로 "기억할 만한 지나침"인 것이다. 


일상의 풍경과 생각과 느낌이 별처럼 은은히 차오른 글은 구체적인 '한 사람'을 선명히 보여준다. 그럴 때 그 글이 다른 이의 경험이나 감정과 겹치고 공감을 낳는다. '남'의 글에서 억눌러놓은 '나'를 보았을 때, 미처 몰랐던 자기의 욕망을 알아차렸을 때, 사람들은 그 글을 좋은 글이라고 느낀다. 고마워한다. 내가 게을러서 혹은 두려워서 아니면 막막해서 미처 들쳐보지 못한 마음의 자리를 누군가 살뜰히 드러내주면 덩달아 후련해지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이란 거창하지도 까다롭지도 않다.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이다. 의문이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놓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세상의 풍경들, 예를 들면 엄마가 매일 일어나 밥하는 일, 마트 종업원이 기계적인 인사를 건네는 일, 괜히 싫은 감정이 드는 것 등 상황과 감정에 집중하고 관찰하고 질문하는 일이다. 가슴에 물음표가 많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많다. 작은 자극에도 촉발을 받고 영감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물음표가 어느 순간 느낌표로 변하고 다른 삶의 국면을 통과하면 그 느낌표는 또 다시 물음표가 된다. 내가 이렇게 믿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찾아드는 것이다. 그 물음표와 느낌표의 반복과 순환이 자기만의 사유를 낳는다. 


매일 개미처럼 쓸고 닦았던 친정 엄마도 생각났다. 그때는 물랐다. 엄마의 노동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편했다면 남이 힘들었단 뜻인데 몰랐다. 삶이란 누군가의 노동에 빚지고 살아가는 것이구나 싶고, 아무튼 그날 하루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다. 덤덤히 글로 썼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게 나를 철들게 한다더니 살림이 그렇다"고. 그런데 만약 내가 한참 살림과 육아에 지쳤을 때 누가 "살림이 널 철들게 할 거야"라고 당위처럼 말했으면 반감이 들었을 것이다. 글 쓸 때 주의해야 하는 지점이다. 살림이 구질구질한 노동이지만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므로 가사노동에 즐겁게 임하자, 라고 쓰면 위험하다. 손에 물 마를 새 없는 날들 속에서는 싱크대에서 자신을 떨어뜨려 사고할 수 없다. 그래서 계몽, 곧 도덕적 마무리는 위험하다. 상황을 단순화시켜버린다. 감정을 평준화한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낀다. 가장 큰 가난은 관계의 빈곤이다. 관계가 줄어들면 자아도 쪼그라들고 관계가 끊어지면 자아도 사라진다. 인터뷰가 처음에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는데 갈수록 사람이라는 개념 자체를 뒤집어보고 사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은 무엇이다에서 무엇이 사람인가로. 낯선 존재와 부딪칠 때마다 인식의 틀은 그렇게 흔들린다. 





남들이 당신을 설명하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남들이 말하게 하지 마라. - 마사 킨더 -


사람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자신은 모릅니다. 알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모르고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데 모르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실은 알고 있는 것도 있거든요. 이 영역이 제가 글을 쓰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 후루이 요시키치 -


산다는 것은 타인의 견해를 가지고 코바늘뜨기를 하는 것이다. -페르난두 페소아 -


첫 번째 판단을 버려라. 그것은 시대가 네 몸을 통해 판단한 것이다. - 니체 -


예술작품은 하나의 감각 존재이며, 다른 그 무엇도 아니다. 그것은 그 스스로 존재한다. - 들뢰즈・가타리 -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 김애란 -


관계란 기억의 교환이다. 다른 사람에게 평범한 기억밖에는 만들어줄 수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자신의 기억을 갖지 못하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 황현산 -


삶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 안도현 -


질서란 허위다. 숨길 것을 숨기고 난 후의 묵계에 불과하다. - 이수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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