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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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정유정 『종의 기원』

| Mashimaro | 2018. 7. 20. 12:03






결국에 이 책을 읽고야 말았다. 상대적으로 《28》은 괜찮게 읽었지만, 《7년의 밤》은 그렇게 읽기가 쉽지만은 않았었다. 이 《종의 기원》 역시 대여기한이 임박해 오는 바람이 서둘러서 읽게 되었는데, 사실 지금까지 읽은 정유정 작가의 소설 중에서 가장 긴장하면서 읽기 시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유정 작가의 작품이야 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이 유독 꺼려졌던 이유는, 대충 책소개를 읽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악'에 대해 파고든 작가의 의지라든지, 주인공의 설정 자체가 사이코패스라든지. 일단 나는 무서운 작품은 아예 읽지를 않는다. 워낙에 겁이 많아서 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러한 소재 혹은 이야기들을 굳이 내가 읽어야하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어찌보면 피비린내 나는 이 작품을 읽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이코패스이다. 작가의 글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7년의 밤》에서는 오영제가, 《28》에서는 동해라는 인물이 등장했었다. 정유정 작가는 늘 작품속에서 중점적으로 악인을 등장시켰고, 이들을 통해서 극적인 긴장감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여전히 갈증이 있었나보다. 작가에 의하면, 오영제나 동해를 통해서도 해소하지 못한 갈등을, 이 작품속에서 유진을 1인칭 화자로 등장시키면서 이 프로젝트를 완성해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덕에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소설을 읽다보면, 1인칭 화자 혹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시키기 마련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이코패스인 심지어 포식자라고 불리는 레벨의 인물인데,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줄곧 그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의 생각과 말을 가장 먼저 그리고 직접적으로 접하는 독서를 하게된다. 아무래도 이 부분에서 주인공에 공감할 수 없어서 거부감을 갖게되는 케이스가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쉽사리 공감을 되지 않았지만, 더 두려운 것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었다. 소설 속에서 1인칭 화자라는 것에 대한 파급력이 이정도인가 싶었다.


어쨌든, 여타 다른 정유정 작가의 작품 처럼, 이 작품 역시 재미있게 술술 읽히는 작품이었다. 역시나 디테일이 살아있었으며, 어떻게하면 2~3일 동안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써내려갈 수 있는지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확실히 초반에는 조금 무섭기도 했고, (문제는 내가 밤에 막차를 타고 퇴근하면서 어두운 길을 걸으면서 전자책으로 이 책을 읽었다는거..ㅠ) 또 생각보다 진도가 더딘 느낌도 있었지만, 어느 지점을 지나면 역시나 문제없이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문제는, 이야기도 결말도 모두 납득은 가지만, 역시나 이러한 작품을 이러한 주제의 글을 굳이 읽어야 할까... 라는 부분에서 갈등이 온다. 재미는 있지만, 역시나 뒷맛이 씁쓸한 것은 틀림 없다. 작가는 인간의 '악'에 대해서 파헤치는 작품이라고 하지만, 역시 그러하기에 본능적으로 '악'에 대한 것을 보고싶지 않은 반사작용도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도망치지 않고 다 읽었다.





운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걸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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