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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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한동일 『라틴어 수업』

| Mashimaro | 2018. 6. 30. 22:04






교보ebook for samsung 덕에 무료대여로 읽게 된 책인데, 워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책이었던지라 득템을 외쳤던 책이다. 하지만 역시 제목에서 오는 이미지가 컸을까? 사실 라틴어 수업이라는 제목에서 진입장벽이 높다고 느꼈다. 결국 기한이 다 되어가서야 부랴부랴 읽기 시작했고, 많은 라틴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내용이 너무 좋아서 진작 읽을걸...하며 살짝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러구보니 최근에 무슨무슨 수업, 내지는 언어 관련된 제목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다. 아마도 가장 먼저 읽었던 것이 《희랍어 시간》, 그리고 그 다음에 읽었던 것이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그리고 나서 이 책 《라틴어 수업》을 읽었다. 물론 세 책은 모두 장르도 다르다. 《희랍어 시간》은 한강작가의 소설이고,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소설처럼 보이지만, 매우 자전적인 에세이에 가깝다. 그에 비해 이 《라틴어 수업》은 정말 수업을 모티브로 한 책이다. 실제로 저자가 서강대학교에서 라틴어 관련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던 것, 그리고 본인 느끼고 전달하고 싶었던 것을 정리한 책이다. 뒷 부분에는 실제 수업을 수강했던 학생들의 글도 실려있어서 매우 따뜻하게 읽었다.


라틴어라는 매개, 그리고 저자가 가지고 있는 베이스 때문에 이 책 아니 이 수업은 자기계발서적 반, 힐링목적의 서적 반.. 이런 느낌이긴 하지만, 이러한 책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라틴어의 어원과 그로인한 역사 그리고 현재에 정착되어 가면서 우리 혹은 작가 본인이 적용해가는 세계관 등으로 연결되는 이야기가 그 어떠한 자기계발 서적들 보다도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특히나 공부하는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나 공부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굉장히 많이 와닿았다. 아마도 내 상황에 더 비추어볼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마치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 느낌도 살짝 있었는데, 아마도 예시로 드는 자료나 이야기들이 가톨릭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개신교쪽이긴 하지만 전혀 위화감없이 전달받았다. 


라틴어를 조금이라도 알면 그 감동이 더 클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라틴어까지 제대로 공부할 자신은 없기에, 저자가 소개해 준 이야기들로 만족하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들춰보고 싶은 챕터들이 많아서, 이런책은 대여로 읽을 것이 아니라 소장을 해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다. 언젠가는 구매해버릴 수도 있을듯하다. 





뭔가를 배우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있어 보이려고, 젠체하려고 시작하면 좀 어떻습니까? 수많은 위대한 일의 최초 동기는 작은 데서 시작합니다. _ LectioⅠ내 안의 위대한 유치함 Magna puerilitas quae est in me


저는 어려서부터 학교와 집에서 "공부해서 남 주냐?"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하지 못했던 대답을 지금은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공부해서 남을 줘야 할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더 힘든 것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공부를 나눌 줄 모르고 사회를 위해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_ Lectio Ⅳ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 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


무엇보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가 나를 '숨마 쿰 라우데'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숨마 쿰 라우데'라는 존재감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스스로 낮추지 않아도 세상은 여러 모로 우리를 위축되게 하고 보잘것없게 만드니까요. 그런 가운데 우리 자신마저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대한다면 어느 누가 나를 존중해주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스스로에, 또 무언가에 '숨마 쿰 라우데'입니다. _ Lectio Ⅵ 각자 자기를 위한 '숨마 쿰 라우데' Summa cum laude pro se quisque


학생들도 대학 생활 동안 맹목적으로 어떤 목표를 세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우선해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죠. _ Lectio Ⅶ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Ego sum operarius studens


제가 이 문장이 말하는 바를 경험해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우울을 느끼게 되는 위치까지 올라가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공부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공부, 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공과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그것에 대해 논한다면 그 말에 무게가 실릴까요? _ Lectio Ⅻ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임에도 사람들은 그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힘들어하고 또 힘들어합니다. _ Lectio ⅩⅩⅦ 이 또한 지나가리라 Hoc quoque transibit!


다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끝이 날 거라는 겁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러니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끝 모를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순간이, 그 일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나가버렸음을 알게 될 겁니다. 

우리가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그 말 그대로 기쁘고 좋은 일도 머물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허망하죠? 하지만 그게 인생입니다.  _ Lectio ⅩⅩⅦ 이 또한 지나가리라 Hoc quoque transibit!


Letum non ominia finit. | 레툼 논 옴니아 피니트. |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

Dum vita est, spes est. | 툼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_ Lectio ⅩⅩⅧ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Dum vita est, spes est



아직도 가끔 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종종 그 책을 펴봅니다. 표지 한 장을 넘기면 교수님께서 직접 써주신 "그대는 어제도, 오늘도 자신의 길을 잘 걷고 있습니다"라는 멋진 말이 저의 모든 선택에 힘을 실어줍니다. (제자들의 편지 _ 김해니 '인생의 선물과 같은 세 권의 책' 中)


교수님께서는 공학도이지만 인문학과 언어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며, 전공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제자들의 편지 _ 이은솔 '존경하는 친구에게 감사를 담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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