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단편선을 읽으면서, 다른 번역본 중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뒤져보니, 열린책들 세계문학에 이 책이 있었다.
노인과 바다가 메인으로 실려있고, 그 이외에 단편 7편(킬리만자로의 눈,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고 행복한 생애, 하얀 코끼리 같은 산,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살인자들, 세상의 빛, 인디언 부락)이 실려있다. 이 중 현대문학판에 실려있지 않은 단편은 '세상의 빛' 뿐이다.
현대문학에서 나온 헤밍웨이 단편선과 열린책들에서 나온 이 노인과 바다(외)의 번역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비교해 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읽으면서 느껴지는 부분은 열린책들 버전의 번역이 친절한 편이다. 여기서 친절하다는 의미는 굉장히 읽기 편하게 문장을 구성했다는 것이다. 사실 생각보다 느낌이 많이 달라서 놀랐다. 현대문학판에서 느껴지던 헤밍웨이의 그 간결한 문체의 느낌이 다소 사라진 인상도 있어서,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수가 없지만, 뭐 취향따라 선택하면 되겠다 싶기도 하다.
두 버전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한다면, 현대문학판은 굉장히 많은 수의 작품을 거의 출간시기순에 맞춰 모은 것이라 한다면, 이 열린책들판의 특징은 대표적인 작품을 뽑아서 실은 것이라 하겠다. 그만큼, 열린책들 버전이 더 잘 읽힐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읽었을 때도 훨씬 수월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문체의 간결함은 줄어서인지, 현대문학 버전에서 느낀 스타카토식으로 따라가며 생생하게 호흡을 맞춰가는 느낌은 확실히 덜했다.
단어를 번역하는 것도 꽤 다른 부분이 있어서, 나름 두가지 버전의 책을 다시 찾아가며 확인해보기도 했다. 특히 물고기 관련용어 같은거 말이다. (예 : 현대문학_청새치 / 열린책들_말린)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의 강점이라고 한다면 역자해설에 꽤 힘을 싣는 다는 것이다. 역자가 작품을 번역하면서 나름의 생각과 해석을 싣고, 그걸 읽으면서 나의 생각과 비교해보고 때로는 비판해보기도 하면서 읽는 재미가 은근히 쏠쏠하다. 그리고, 작품의 배경이라든가 알지못한 여러가지 정보를 제공받기도 한다.
미국의 저명한 서평가인 클리프턴 패디먼 Clifton Fadiman은 <헤밍웨이 문학은 일언이폐지하면 단편 50편>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노인과 바다」와 1938년에 나온 최초의 단편 49편을 합쳐서 말한 것으로 곧 헤밍웨이 문학의 본령은 단편소설이라는 뜻이다. (이종인_역자해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헤밍웨이를 제대로 읽으려면 역시 단편을 읽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뿌듯함이 있었다.
그리고,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을 기독교적 세계관을 대입해서 설명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했는데, 사실 난 이 부분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 실제로 헤밍웨이가 그러한 생각으로 상징을 적용해서 작품을 썼을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내가 성경에 어느정도 익숙한 크리스천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러한 부분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뭐,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이 역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은 역자해설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노인과 바다」에서 말린은 조각배 주위를 빙빙 돌다가 자신이 노인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공중으로 힘차게 뛰어오르며 그 아름다운 모습을 비극적으로 드러낸다. <고기는 이제 죽음을 예견한 듯 아연 살아나면서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랐다. 그 엄청난 길이, 넓이, 그놈의 엄청난 힘과 아름다움이 여실하게 노출됐다. 놈은 배에 서 있는 노인의 머리 위 상공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역자는 이 부분을 번역하면서 죽음을 이기지 못한다면 스스로 먼저 죽겠다는 헤밍웨이의 불패 정신을 읽었다. 우리 동양에는 사가살불가탈이라는 명언이 있는데, 헤밍웨이의 자살야말로 불가탈의 용기를 보여준 것이 아니었을까. 헤밍웨이의 막내아들 그레고리 Gregory는 <아버지는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을 감행함으로써 자신의 용기를 보여 주었다>라고 했다. 역자는 이 해석에 동의한다. (이종인_역자해설)
라는 부분인데, 사실 나는 이 역자의 의견에 절대 동의할 수가 없다. 특히나 이 작품에 기독교적 세계관이 대입되었더라면 정말 말도 안되는 모순이라고 생각되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자칫 잘못하면 자살에 대한 합리화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헤밍웨이의 선택 자체를 타인인 내가 뭐라고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겠지만, 그러한 자살이라는 행위를 예찬하거나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긍정화 시키기에는 조금 더 신중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헤밍웨이의 아들이 부친의 사후에 그러한 멘트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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