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HONG[本]'은 일본어로 '책'이라는 뜻입니다.

Books/Book Review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 Mashimaro | 2018. 2. 14. 21:54



일본어 리뷰 [Japanese Review]

チョ・ナムジュ 『82年生まれ、キム・ジヨン』




진작에 사두기만 했다가 정작 읽는 것이 두려워서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이 책을 완독했다. 사실 분량도 적은 편인데다가 문체도 굉장히 간결 담백해서 맘잡고 읽으면 몇시간만에 훅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담백한 문체 안에 녹아있는 내용들이 너무 힘들고 답답했다. 이 책 말미에 붙어있는 작품해설에도 나와있지만, 정말 이 책은 완벽하게 보편성을 추구하는 작품이었다. 



일반적으로 소설의 주인공은 독특하다. 독특한 주인공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삶을 사는지가 소설의 흥미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은 익숙하다. 특수성이 아니라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이 소설의 특수성이다. (김고연주 _ 작품해설: 우리 모두의 김지영)



이 책을 읽는 독자들. 특히 여성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힘들어하는 부분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김지영, 그리고 김지영의 언니 김은영, 엄마, 시누이까지..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전혀 새롭지 않고, 심지어 너무 익숙해서, 이게 소설인지, 르포인지, 내 여동생 일기장인지 분간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등장하는 남자들의 캐릭터도 마찬가지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등장인물들과 상황들이 펼쳐진다.



『82년생 김지영』의 에피소드들은 무척이나 사실적이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 회사 생활, 결혼 생활에 이르기까지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경험들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앞에 그려질 정도다. 아마도 독자들은 자신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나와는 달리 김지영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김지영마저도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이쯤되면 내가 김지영인지, 김지영이 나인지 헷갈릴 정도다. 김지영이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고연주 _ 작품해설: 우리 모두의 김지영)



사실 이 책이 나에게 더 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또 있다. 김지영, 김은영과 나는 같은 또래이다. 김지영의 가족과 비슷하게 딸-딸-아들의 삼남매였고, 줄곧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6식구가 함께 생활해 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할머니는 아직도 비교적 정정하게 살아계신다는 것 정도. 읽으면서 환경, 시대, 겪는 상황들, 각 장면을 접하면서 드는 생각들.. 이 모든 것이 100% 일치한다고 할 순 없었지만,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런 작품은 처음이기도 하고 그러하기에 더 힘든 작품이기도 한 것 같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조금 더 서둘러 읽게 된 계기는, 친한 남자후배가 이 책을 읽고 나누어 준 감상 때문이었다. 참고로 이 후배는 굉장히 성실하고 착한 친구이다. 읽으면서 어머니도 생각나면서 많이 속상했다고 나누어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남자가 이렇지는 않은데 너무 남자에 대해 오히려 나쁜 인식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이야기했다. 읽기 전부터 어느정도 내용은 알고 있었고, 주위에 이미 책을 읽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걸 바탕으로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서둘러 책을 읽었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서, 그 후배에게 할 말이 참 많아져 버렸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여성독자들은 오히려 남성들이 읽어야 한다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나 역시 그 이야기에 공감한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힘든 것은,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현실'이고, 사실 '진짜 현실'은 책에 나와있는 이야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많은 여성독자들이 책을 읽고나서 이야기하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남성들은 이러한 이야기가 생소한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이건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닐거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자신들이 가볍게 지나친 상황들을 다시 곱씹어보게 되었다는 남성독자들도 꽤 있다. 그만큼 남녀사이의 간극이 아직도 굉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는 절대 남성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갑갑해지지 않는 여성이 몇이나 될까? 이전보다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체감하고 있는 여성들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뭘까? 그렇다. 나아진 것 같아 보이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굴레가 되고 스트레스가 되어버리는 사회가 되었다. 여성문제가 이제는 종교나 정치문제처럼 매우 첨예하고 민감한 문제가 되어버린 사회가 되었다. 어찌보면 이 책은 여성도, 남성도, 굳이 읽고 싶지 않은 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책을 우리가 함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제야 어머니와 이모는 사랑하는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는 자신들에게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뒤늦게 산업체 부설 학교에 다니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해 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어머니는 또 검정고시 공부를 했다. 막내 외삼촌이 고등학교 교사가 되던 해에 어머니는 고졸이 되었다. 


"나도 선생님 되고 싶었는데."

엄마는 그냥 엄마만 되는 줄 알았던 김지영 씨는 왠지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아 웃어 버렸다. 


김은영 씨는 다녀왔던 교대에 원서를 냈고, 합격했다. 기숙사에도 합격했다. 스무 살,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딸 앞에 간단한 살림살이들과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당부들을 늘어놓고 돌아온 어머니는 김은영 씨의 빈 책상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다. 그래도 아직 어린애인데 집에서 내보내는 게 아니었다고, 정말 가고 싶은 학교에 가도록 두었어야 했다고, 나처럼 만들지 말아야 했다고. 딸이 안쓰러운 건지 어린 시절의 자신이 안쓰러운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절망적인 것은 학과장의 대답이었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워 해. 지금도 봐, 학생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줄 알아?"


김은실 팀장은 4명의 팀장 중 유일한 여자 팀장이었다. 초등학생 딸이 하나 있는데, 친정 어머니와 함께 살며 육아와 가사는 완전히 어머니께 맡기고 본인은 일만 한다고 들었다. 누군가는 멋지다고 했고 누군가는 독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뜬금없게도 남편을 칭찬했다.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김지영 씨의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동안 신입 사원을 받을 때마다 느낀 건데, 여자 막내들은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귀찮고 자잘한 일들을 다 하더라고. 남자들은 안 그래요. 아무리 막내고 신입 사원이라도 시키지 않는 한 할 생각도 안 해. 근데 왜 여자들은 알아서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두 어머니가 한참 동안 자신의 딸들이 얼마나 편하게 공부만 하고 직장만 다녔는지를 조목조목 얘기하다가 마지막으로 정대현 씨의 어머니가 말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나요. 다 하면서 배우는 거죠. 지영이가 잘할 거에요."

아니요, 어머니. 저 잘할 자신 없는데요. 그런 건 자취하는 오빠가 더 잘하고요, 결혼하고도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김지영 씨도, 정대현 씨도,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자신의 손으로 '아니요' 칸에 표시를 하는 김지영 씨의 마음이 왠지 헛헛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정대현씨는 진심이었고, 그런 남편의 뜻을 잘 알면서도 김지영 씨는 불쑥 화가 났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끝났다. 김지영 씨가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떄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엄마도 여자라거나, 집에만 퍼져 있지 말고 좀 꾸미라거나 하는 말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선물한다. 끝. 깔끔하다. 김지영 씨는 기분이 좋아졌고, 그 자리에서 립글로스부터 열어 발라 보았다. 정말 김지영 씨에게 잘 어울렸고 기분이 더 좋아졌다. 




'공감'과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