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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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 Mashimaro | 2017. 5. 23. 20:55






최근에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종종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은 그러한 책들 중에서도 조금은 특이한 책이다. 일반적인 글쓰기라기보다 연설문에 대한 이야기이고, 심지어 그냥 연설문도 아니고 대통령의 연설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인 강원국씨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서 연설문을 쓰는 스피치라이터였다. 저자에 의하면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늘 연설문에 대한 책을 내기 원했었고, 또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의사전달과 글쓰기에 대해서 가르치기를 원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글쓰기와는 조금 다를수 있다. 


이 책의 하나의 재미라고 한다면, 우리가 몰랐던 청와대 안에서의 이야기나 두 대통령의 숨겨진 캐릭터 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두 대통령 모두 이미 고인이 된 터라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살아있을 당시에 공식적으로 보여주었던 그 모습 이외에 평소의 일에 임하는 모습이라든지, 아니면 연설문을 지시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두 사람의 캐릭터가 조금은 읽혀지는 부분이 이 책이 재미있는 하나의 포인트이다. 사실 두 대통령은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면서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김대중 대통령은 굉장히 꼼꼼하고 노력파의 FM적인 이미지가 강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는 그에 비해 실제적이고 비교적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소통하려는 것, 즉 의사전달을 할 때 상대방에게 온전하게 전달되는 것에 굉장히 힘을 실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스타일과 준비하는 과정들에 차이는 있었지만,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에 관심을 두었다는 것은 공통적이었던 것 같다. 


또 한 이 책은 글쓰기에 스킬 또한 전달해주고 있다. 챕터별로 굉장히 간략하게 이야기를 하곤 있지만, 그 간략한 글을 통해서 꽤 농축된 정보들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나 한 나라의 리더가 작성하는 연설문이기 때문에 그 상황과 대상을 중시해야 하며, 또한 실제 연설을 했을때 전달되어질 파장 혹은 영향력에 유의하며 작성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여러 사례들을 들어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이 실제 두 대통령의 재임기간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또 그 시기를 내가 같이 겪어왔었기 때문에, 나 역시 지나간 그 시간들을 회상해가면서 읽을 수 있었다. 아 저 때는 저렇게 준비를 하고 저렇게 대처를 했었던거구나.. 하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단순한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어쩌면 우리 실생활에서는 생소할 수도 있는 스피치라이터라는 직업에 대해서 조금은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스피치라이터라고 하면 왠지 미국의 백악관만 상상되곤 했었는데, 우리나라의 실제 스피치라이터를 역임했던 저자가 직접 풀어주는 이야기이기에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최근에 정치적으로도 꽤나 여러가지 일과 이슈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뭔가 한층 더 와닿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다시 국민들과 공감할 수 있는 대통령의 스피치를 듣는 시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가져본다.  





노 대통령은 회의 자리에서도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래서 회의 중에 잠시 대화가 끊기는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곧이어 쏟아지는 대통령의 말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누구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원인 진단에서부터 대안 제시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사안을 전후좌우로 헤집으며 의견을 내놓았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의견(생각)이 있는 사람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의견이 없는 사람이다."고 할 정도로 생각을 중시했다. 



주된 기조로 80%, 그렇지 않은 쪽으로도 20% 정도를 안배하는 게 좋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모든 진실에는 흑백이 없다."

글에만 기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도 기조란 게 있다. 성격일 수도 있고, 성향일 수도 있다. '그 사람 어떤 사람이야?라고 물었을 때, '어떤'에 해당하는 게 기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한마디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기조잡기는 어려운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주관이 뚜렷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분이다. 그래서 흔히 고집이 셀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적어도 연설문 수정과 관련하여 겪어본 바로는 그렇다. 어떤 참모가 '이 얘기는 수위가 너무 높습니다' 하면 처음에는 듣기만 한다. 그런데 그 참모가 다시 같은 내용을 건의하면 항상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두 번씩이나 얘기할 때는 필시 무슨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수용하는게 맞습니다. 터무니없는 얘기가 아닌 한 그 사람을 참모로 뒀으면 받아들여야지요."



글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원칙, KISS! (Keep It Simple Short)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할 수만 있다면 짧을수록 좋다. 글이 길다고 감동이 더 있고, 더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광고 카피처럼 때로는 한 문장, 단어 하나가 긴 글보다 더 힘 있고 감동적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글이 길면 초점이 흐려지고, 읽는 이로 하여금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읽는 사람의 수고와 시간을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별다른 감동도, 유익도, 재미도 없는 글을 긴 시간 읽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누구나 아는 얘기 중에, 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후 반응이 궁금해서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

이에 대해 출판사에서 답을 보내왔다.

"!"

그 결과로 『레미제라블』이 탄생했다.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글이 좋은 글이다. 군살은 사람에게만 좋지 않은 게 아니다.



글을 쓰는 목적 중의 하나는 불확실한 것은 확실하게, 애매한 상황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에 역행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미국의 국민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그랬다. "정확한 단어와 비교적 정확한 단어는 번갯불과 반딧불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또한, 진정성은 선한 뜻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취지가 좋으니까, 나는 이런 선한 동기를 갖고 한 일이니 진정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은 곤란하다. 진정성은 자기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이 막스 베버(Max Weber)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말한 책임윤리이고, 진정성이다.

2003년 10월 당시 최도술 비서관의 비자금 사건이 불거지자 노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 모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도술 씨는 약 20년 가까이 저를 보좌해왔습니다. 그의 행위에 대해서 제가 모른다 할 수가 없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선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데 대해서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립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광복 이후 최고의 연설가라고 하는 데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또한, 사후에까지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정치인이 됐다. 왜일까? 그 답은 정체성에서 찾아야 한다. 정체성은 행적으로부터 나온다.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중요하다. 이미지가 정수기를 거쳐 나온 물이라면, 정체성은 있는 그대로의 물이다. 그 사람 자체다. 두 대통령의 살아온 역정이 좋은 연설을 만드는 힘이었던 것이다. 



'진짜'를 보여줘야 한다. 가짜는 금세 들통 나게 돼 있다. 만들어낸 가짜는 반드시 실패한다.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그런 점에서 두 대통령은 좋은 '진짜'를 가졌다. 속이 한없이 여렸다. 감동도 잘하고 수줍음도 많았다. 무엇보다 인간적이었다. 

영상 시대다. 비주얼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다. 감성적・정서적 접근이 필요하다. 콘텐츠를 중시하되 이미지도 놓치지 말자. 아니 적극적으로 신경 써 관리하자. 단, 진짜를 보여주자.



글은 꼭 혼자 쓸 필요 없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하지 않던가. 참여정부 연설비서실의 독회제도를 자기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활용해보는 것은 어떤가. 그게 귀찮다면 적어도 주변 사람에게 글을 보여줘라. 글은 여러 사람에게 내돌릴수록 좋아진다. 



「불후의 명곡」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유명 가수의 인기 가요를 후배 가수들이 부른다. 같은 노래인데, 전혀 다른 노래처럼 들린다. 편곡을 해서 자기 스타일로 부르기 때문이다. 화가나 문인도 그림과 글만 보고 그것이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화풍과 문체 때문이다. 뭐라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노무현에게도 노무현의 색깔이 있다. "문체는 바로 그 사람이다."고 한 프랑스 철학자 뷔퐁(Georger Louis Leclerc Beffon)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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