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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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카이 버드, 마틴 셔윈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Mashimaro | 2023. 10. 11. 21:21

 

 

 

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영화 '오펜하이머'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워낙에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 사람 중 한명인데, 유독 이 영화에 관련된 컨텐츠를 많이 접하게 된데다가, 원작이 그의 전기인 이 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럼 책이나 읽어볼까..하는 생각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때마침 참여중인 과학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길래 좋은 기회다싶어 읽기 시작했다. 

 

뭐 그동안 워낙 많은 과학관련 서적을 읽으며 절망아닌 절망을 했던지라.. 조금 걱정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전혀 어려운 책이 아니었고, 확실히 전기다보니 로버트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에 대해서 상당히 심층적으로 알게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전기를 읽다보면 그 사람의 좋은점 뿐 아니라 이상한 부분, 강박적인 부분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이 책 역시 그렇다. 그의 성격 뿐 아니라 가족의 성격, 그리고 그가 사귀었던 몇몇 여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꽤 많은 부분들이 비교적 디테일하게 설명되고 있다. 하도 많은 전기에서 접하다보니 이제는 살짝 익숙해지기도 한 불륜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 실려있다. 그리고 읽으면서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이 참 여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나 가장 중요한 이슈는 핵무기에 대한 관점일 것 같다. 오펜하이머를 리더로 하는 맨하튼 프로젝트의 유명한 과학자들은 당시 명분도 있었고, 또 그것을 과학의 힘으로 도전하고자 하는 시대적 소명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이후 다시 핵무기 관련 이슈나 수소폭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그 과학자들의 입장은 갈린다. 오펜하이머 역시 자신이 한 짓(?)에 대한 후회가 강하게 그려진다. 이후 그의 행보가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이해가 되는 입장이지만, 과연 그 시절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꽤나 혼란스러운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러한 이슈는 현재에도 역시나 많은 골치거리임에 틀림없다. 이 책이 전기이기는 하지만 전쟁과 무기,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우리의 윤리관과 가이드라인에 대해서 많은 과제를 던져주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어린시절과 그가 과학자로 성장하기 까지의 시간들, 그리고 그가 공산당과 연결되는 부분들, 그리고 맨하튼 프로젝트와 그 이후의 연구자, 실무자로서의 삶, 이후 고통받게 되는 시간들로 크게 나뉘게 되는 것 같은데, 책 속에서 이렇게까지 공산당이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시대적인 상황도 있었겠지만, 그가 지내왔던 시간 중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간관계가 말년에 그를 그렇게까지 괴롭히게 할 줄을 알았을까... 어찌보면 참 비운의 시기를 겪었다고 보이기도 하지만, 또 어찌보면 그가 차곡차곡 쌓아왔던 관계들이 시대적으로는 그러한 결말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을지도..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거의 후반부에서는 대표 빌런으로 생각되는 스트라우스와는 정말 악연이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읽고있는 내가 짜증이 날 정도였다. 어쩌면 그리도 집요하게 일을 만들어가는지... 이래서 왠만한 갑에게는 책잡히면 안되는 것인가... 읽으면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꽤나 씁쓸했던 것 같다. 이건 뭐... 드라마 뺨치는 전개...--;;

 

그의 말년이 너무 괴로워 보여서 막판에는 나조차도 너무 책을 힘들게 읽었던 것 같은데, 또 그러한 과정이 있어서 이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이 계속해서 조명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라면, 유명해지지 않아도 좋으니, 그런 일은 안겪었으면 좋겠지만... 어쨌든 영화는 또 다른 영상미와 구조가 있다고 하니 꽤 괜찮을 것 같긴 하지만, 난 이미 이 책 한 권으로도 충분히 배부르지 않았나 싶다. 한동안 그의 삶을 너무 깊숙히 들여다봤던 것 같은데, 읽으면서 기도 많이 빨렸고... 이제는 당분간 그 오펜하이머를 좀 놓아주어야할 것 같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텔러를 해고하는 대신에, 그에게 원하는 것을 주었다. 그에게 핵융합 폭탄의 가능성을 탐구할 자유를 주었던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게다가 없는 시간을 쪼개 1주일에 한 시간씩 그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로 하기까지 했다. 

수학자들은 작업의 특성상 가장 직관력 있는 업적을 20대나 30대 초반에 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역사학자들이나 사회 과학자들이 진정으로 창의적인 업적을 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 준비에 몰두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연구소는 젊고 뛰어난 수학자들을 쉽게 영입할 수 있었지만, 역사학자는 대부분 상당한 경륜을 가진 학자들이었다. 그리고 수학자들은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읽고 의견을 낼 수 있었지만, 역사학자는 수학부 교수 후보를 평가할 수 없었다. 여기에 근본적인 모순이 있었다. 

 

1949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미국은 전쟁 중이 아니었고, 핵무기 개발 경쟁은 소련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새롭고 위험한 국면을 맞이했으며, 자문 위원회의 위원들은 미국에서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과 경륜을 갖춘 핵 과학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몰살시킬 수 있는 무기에 대한 논의에서 군사 정책적 측면만을 고려할 수 없다는 데에 모두 동의했다. 기술적인 평가는 물론이고 윤리적인 문제도 같이 고려해야만 했다. 

 

스트라우스는 마음 맞는 몇몇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오펜하이머를 "끌어내리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미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거대한 것이었다. 겉보기에는 단 한 명의 과학자가 파문당한 사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모든 과학자들은 앞으로 국가 정책에 도전하면 어떤 심각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리라는 점을 알아채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몇 년 동안, 과학자들은 새로운 부류의 지식인들로 떠올랐다. 그들은 과학자로서만이 아니라 대중 철학자로서의 정당성을 가지고 정책 수립에 전문 지식을 제공할 수 있었다. 오펜하이머가 끌어내려지자 과학자들은 앞으로는 좁은 과학 문제의 전문가로서만 국가에 봉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사회학자 대니얼 벨(Daniel Bell)이 나중에 언급했듯이, 오펜하이머의 시련은 전후 시기 "과학자들의 구세주로서의 역할"이 끝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그의 재판은 과학자와 정부 사이의 관계에 큰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앞으로 미국 과학자들은 가장 좁은 방식으로만 조국에 기여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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