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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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호프 자런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 Mashimaro | 2023. 10. 15. 20:38

 

 

 

이 책은 예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정재승교수님이 소개하는 내용을 듣고 쟁여두었던 책인데,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더 웃긴건 이보다 훨씬 이전에 동일저자의 그 유명한 《랩걸》을 쟁여놓고는 그건 아직 읽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랩걸》보다도 이 책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따라서 난 이 저자가 연구자임을 이미 알고있고, 그러한 입장에서 지구, 그리고 기후변화에 이야기하는 책임을 이미 인지한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다. 

 

사실 기후변화, 기후위기에 대한 책은 이미 꽤 나와있고, 최근에는 더욱 더 그 양이 급증하는 추세다. 나 역시도 관련서적을 조금 읽긴 했지만, 사실 많이 찾아읽은 편은 아니었다. 다들 비슷한 논조의 이야기를 하고, 결국은 어떠한 방식으로 위기감을 공유하고 경각심을 주는 식의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은데, 저자 역시도 그러한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있어서 조금 더 편하게 다가왔던 점은, 그녀가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고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저자 나름의 조사한 데이터를 열심히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TJ인 나로서는 이런 점에서도 이해가 쏙쏙되고 공감이 많이 되었다. 

 

사실 이 책은 무엇보다 제목이 인상적이었는데, 저자는 본인이 '풍요로움'쪽에 속하는 삶을 살았고, 우리의 기후문제를 불평등의 문제와 연결시킨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굉장히 와닿았는데, 사실 우리가 현재 겪고있고 만들어왔던 이 환경문제는 사실 풍요로움쪽에 있는 사람들이 일으킨 것이 대부분이며, 그에비해 풍요롭지 못한 곳에 서 있는 이들이 더 많은 리스크를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여러가지 데이터를 통해서 이 부분을 더 정확하게 짚어준다. 결국 이 범지구적인 문제를 직면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이 불평등을 제거하면서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중요하다는 점을 꼬집는다. 모두들 늘 느끼고있으면서도 드러내지 못했던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상기시켜주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대단한 일들도 시작은 사소했고, 이후 세상을 바꿀 정도로 점점 더 커진 것이다.

 

인간과 동물은 음식의 통로이고 도관이다. 다른 동물들의 무덤이자 죽은 존재들의 쉬는 장소로, 다른 존재를 죽여 생명을 얻고 있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1508년경)  

 

죽음은 위대한 평형 장치라 할 수 있는데,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그 사이에 있거나 모든 지역에서 거의 비슷한 비율로 사람들이 사망한다는 이야기가 별로 놀랍지 않을 것이다.

 

앞서 소개한 위대한 사상가들이 결코 고민하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사회 속 여성의 지위와 여성이 평생 낳는 평균 자녀 수 사이의 상관관계다. 건강과 기회, 사회 참여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가장 적은 전 세계 10개국 중 7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전 세계에서 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들이기도 하다. 정반대로 성별 격차가 가장 큰 6개국은 소득이 가장 낮은 국가군에 속한다. 부가 여성의 건강, 기회, 사회 참여를 보장하는지, 아니면 이런 요소들 덕에 부유함이 가능해지는지가 명확하지는 않다. 아마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을 것이다.

 

인도와 사하라 사막 남쪽 상황은 거의 비슷한데, 이 두 지역은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를 거의 소비하지 않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데 전 세계 전기량의 10퍼센트를 채 사용하지 않는다.

 

부유한 OECD 국가들은 지구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도 확장을 시도해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고, 꽤 풍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그 지역을 채워갔다. OECD 국가들에 살고 있는, 전 세계 인구의 15퍼센트가 매년 만들어내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계는 나머지 지역에서 만들어내는 가치의 두 배에 이른다. 이렇게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며 평범한 삶을 누리는 15퍼센트의 사람들이 전 세계 연료의 40퍼센트와 전 세계 전기 생산량의 거의 절반을 소비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결핍과 고통, 그 모든 문제는 지구가 필요한 만큼을 생산하지 못하는 무능이 아니라 우리가 나누어 쓰지 못하는 무능에서 발생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조사와 연구를 시작했을 때 희미한 북소리처럼 들리던 것이 이제는 내 머릿속에서 마치 주문처럼 울려 퍼지고 있다. 덜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누라. 13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우리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도록 해주는 마법 같은 기술은 없다. 소비를 줄이는 것이 21세기의 궁극적인 실험이 될 것이다. 덜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누는 것은 우리 세대에게 던져진 가장 커다란 과제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려운 제안이라서 실현이 가능할까 싶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를 이 혼란 속에서 구하는 데 시작점이 될,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지난 50년 동안 대기 중으로 뿜어낸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 배출량의 1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데, 그 영향에 대해 가장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장면은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덕을 보는 사람들과 그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가장 많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일치하지 않는다.

 

치과의사들은 청량음료를 마시는 것이 치아에 나쁘다고 이야기하는데, 이산화탄소가 물과 만나면 산 酸을 만들어 치아의 법랑질을 부식시킨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이다. 같은 일이 바다에서도 일어나는데 바닷물의 산도가 높아지면 전 세계 산호초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껍질이 있는 해양 동물은 성장은 물론 단단한 외피를 유지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화석연료를 계속해서 태울수록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매일매일 대기 중으로 유출되고, 바다로도 유출되는 것이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아무런 생각도 없고 다듬어지지도 않은 것들이 많다. 한편, 컴퓨터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링크를 클릭하면 기후변화에 관해 필요 이상으로 불안을 선동하는 사람들의 위선과 과장도 확인하게 된다. 마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대기가 신경 쓰기라도 하는 듯, 우리가 고함을 치면 물이 다시 빙하로 되돌아가기라도 하는 듯, 논쟁에서 이기면 그 자체로 무엇인가를 달성하기라도 하는 듯 두 진영으로 나뉘어서 우리는 인터넷 너머의 상대를 자극한다. 미국은 불행한 커플이 되고 말았다. 양쪽이 너무나 겁에 질린 나머지 그 어떤 종류의 변화도 살피지 못하고 그저 설거지와 빨래에 관한 싸움만 벌이느라 곤경에 빠진 커플 말이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유일한 대상인 지구는 정치적 공방의 볼모가 되고 말았으며, 기후변화는 양쪽에서 내던지는 무기가 되었다. 특히 과학자들이 보기에는, 정치적 불화와 양극화 때문에 우리가 구하려 애쓰는 이 지구가 심각한 해를 입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는 우리 모두가 무얼 하고 있는가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라는 말에 나와 여러분이 언제나 포함되어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사실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그런 일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그런 일들을 ‘믿거나’ 혹은 ‘부정하거나’와 상관없이 말이다.

 

내가 아는 가장 똑똑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줄 데이터를 모으느라 자신의 인생을 바치고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아침 일찍 연구실에 나와 늦게까지 머물며 해수면 상승과 온도 상승과 극지방 해빙의 정확한 강도를 측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현장으로 걸어 들어가 무엇이 존재하고 무엇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 확인한다. 이런 패턴을 처음으로 발견한 생태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나 장비에 대해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관찰하고 일하지, 그저 걱정만 하고 있지는 않는다. 결국 기상학은 과학의 일부인데, 과학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과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 있다. 많은 일을 해야 하고 연구비는 모자라지만, 이 모든 것을 알아내는 일을 중단하는 데에는 확고한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우리가 식량과 안식처, 깨끗한 물을 누리는 집단이라는 사실은 지금껏 우리가 위태롭게 만들어온 세상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언가 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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