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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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신예희 『마침내 운전』

| Mashimaro | 2023. 8. 3. 17:09

 

 

 

 

 

책 한 권을 다 읽고, 또 매의 눈으로 이런 저런 책들을 둘러보던 그때, 내 눈에 포착된 이 책. 신예희 작가의 책이 또 있었어? 하면서 집어들게 된 책이다. 워낙에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도 《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주저없이 집어들고 책을 펼쳤는데... 또 이렇게 쭉쭉 읽혀져버리는 마법. 그도 그럴것이 신예희작가는 글을 참 재미있게 쓴다. 아니 맛있게 쓴다고나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탁월한 것은 소재선택이다. 늘 읽다보면 느끼는건데, 어쩜 모두가 경험하는 그런 소재들을 이렇게 잘 집어내는 것일까... 덕분에 이번에도 고개도 끄덕거리며, 폭소하기도 하며, 추억 속에 잠겨보기도 하며 참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신예희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그 글투... 혹은 말투...일 것 같다. 실제로도 그러한 말투를 사용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책을 읽다보면, 정말 음성지원이 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우리도 실제 사용할 법한 표현이 그대로 쏟아져나와서 이게 작가의 말투인지 나의 말투인지... 거의 동체(?)가 되어 책 속에 함께 들어가있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또 한가지. 솔직함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정말 소탈하고 가감없는 표현 그대로를 책 속에서 펼쳐준다. 그래서 더 공감포인트가 많은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에서도 운전하면서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감탄사나 비명같은 장면들이나, 하이패스나 톨게이트 앞에서 당황해봤던 경험, 그리고 나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작가의 길치로서의 경험담은 정말 가히 이 책의 최고의 씬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빵빵 터졌던 것 같다. 진짜 얼마나 웃으며 읽었던지... 김혼비작가의 유머스러운 입담.. 아니 글담도 좋아하지만, 신예희작가의 유머러스함 또한 너무 좋다. 뭔가 독자친화형이라고나 할까? 또 다음 작품은 어떤 소재로 등장할 것인지 매우... 궁금하고 기대된다. 

 

 

 

모두들 나 좋으라고, 도움되라고 하는 말이라고들 했지만 같은 말을 계속 듣다 보면 짜증이 난다. 해야 되면 그때 할게, 필요하면 그때 할게,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히려 머릿속이 단순해지고 맑아졌다. 8차선 도로 위에서, 터널 안에서, 나 좀 끼워달라며 방향지시등을 켜고 애절하게 손을 팔랑팔랑 흔들면서, 내 고민의 우선순위가 재정렬되기 시작했다. 대출 이자고 마감 일정이고, 인간관계고 노후 걱정이고 뭐고 알 게 뭐야. 당장 살아서 집에 가는 게 먼저지, 이 사람아!

 

서툴고 정신없지만, 서툴러서 설레기도 한다. 희한하게도 그렇다. 40대의 어른은, 특히 나처럼 20년 넘게 프리랜서로 혼자 일해온 사람은 '저 이거 할 줄 몰라요'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다. 몰라도 아는 척, 없어도 아는 척, 시치미 뚝 떼고 표정을 관리해야 클라이언트님께서 일을 내려주신다. 궁지에 몰릴 때면 보는 사람 없는 곳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고, 다시 시치미 뚝.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완전한 초보자가 되니 마음이 무척 편해진 것이다. 몰라요, 못해요, 소리를 맘 놓고 하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이젠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운전을 할 때마다 배울 거리가 끊임없이 굴러나왔다. 이 긴장감과 압박감, 두렵지만 싫지 않아. 오히려 설레. 

 

두어 달쯤 망설이다, 그래도 붙이기로 결정. 나름 산업디자인 전공자라, 최대한 보기 좋은 걸 찾아 헤맸다. 나의 소중한 첫 자동차에 붙이는 거니 깔끔하고 세련된 걸로 하고 싶다. 진지하고 정중하고 깍듯했으면 좋겠다. 장난스러운 것도, 무례한 것도 싫다. 초보운전 스티커가 무례할 수 있냐고? 있다. 너무 있다. 다들 많이 보셨을 것이다. 대표적인 게 이런 건데, 
이 안에 까칠한 내 새끼 있다. 

가까이 붙으면 브레이크 밟아버린다.

운전 못하는 데 보태준 거 있수?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생산자와 구매자 양쪽 모두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저런 스티커를 붙인 자동차와는 얽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아, 혹시 그래서 일부러 붙이는 건가?

 

운전 시작하길 미루고 또 미룬 데는 요런 문제도 컸다. 세상에, 길에서 얼마나 헤매고 다니게 될까.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힘주어 강조했다. 아냐 아냐, 운전을 하면 방향감각이 좋아질 거야. 저, 정말? 하지만 방향감각과 관련된 나사가 살짝 빠져 있는 사람이 어느 날 운전대를 잡았다고 해서 갑자기 나사가 벌떡 일어나 훌라춤을 추며 제자리를 찾아가지는 않는다. 이건 말하자면, 대학만 가면 살이 쪼옥 빠질 거라는 소리와 동급이다. 운전을 하기 전이나 후나, 나는 똑같이 방향치다. 달라진 게 있다면 기동력을 얻은 방향치가 되었다는 것. 이젠 더욱 커다란 반경 내에서 과감히 길을 잃는 자가 된 것이다. 그저 집 주변에서 운전 연습을 좀 해보려던 건데 정신을 차려보니 톨게이트 앞에 와버렸다는 식으로. 그것도 꽤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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