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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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김겨울 『언제나 다음 떡볶이가 기다리고 있지』

| Mashimaro | 2023. 7. 25. 02:19

 

 

 

 

오랜만에 가벼운 에세이를 집어들었다. 늘 가벼운 에세이를 찾거나, 독태기에 접어들었을 대에는 아무튼 시리즈를 찾아읽곤 했는데, 이번엔 독태기라기보다 자꾸 눈에 띄는 책이어서 읽기 시작했다. 사실 김겨울작가는 유튜브채널을 구독하고 있기도 하고, 또 SNS도 팔로우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해서 피드에 자꾸 뜨는 책이기는 했다. 하지만 왠지 요조작가의 《아무튼 떡볶이》와 겹치는 이미지도 있고, 또 에세이가 막 땡기지는 않았던 터라 미뤄두고 있었는데, 《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를 완독한 이후 밀리에서 기웃기웃거리다가 발견한 김에 주욱 읽어버리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 역시 단숨에 읽어버리게 되는 책이다. 일단 내용이 어렵지도 않을뿐더러 심지어 공감되는 부분들도 있기에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에서 새롭게 발견한 점은, 김겨울 작가가 이렇게나 음식에 대한 묘사가 뛰어났나 싶었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떡볶이에 대한 이미지가 그대로 그려졌고, 무엇보다 조리법을 하나하나 설명해가는 부분이나 묘사해가는 부분에서 너무나 생동감이 있어서 놀랐다. 텍스트일 뿐인데도 그 맛이 전해지는 듯 하고, 또 그 식감이 전달되는 듯 했다. 페혜라고 한다면 마치 먹방을 본 이후처럼 급 떡볶이가 먹고싶어진다고나 할까...ㅎㅎ

 

거기에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겁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적절하게 김겨울 작가의 나름의 생각들을 녹여내었다. 떡볶이 사랑을 끊임없이 고백하는 가운데, 은근한 닭볶음탕이라는 용어에 대한 디스, 그리고 비건으로서의 노하우 및 정보를 통한 은근한 권유(?) 등.. 김겨울이라는 사람의 생각과 삶도 살짝살짝 고개를 내밀어 준다. 이런게 에세이를 읽는 맛이긴 하지. 에세이는 그저 가볍게 읽고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매력이 있다. 뭐 워낙에 작가가 유튜버인지라 너무 많은 부분을 통해 접하고있긴 하지만, 또 역시 작가란 글을 통해 만나는 것이 찐(?!)이 아닐까? 그래서 오랜만에 더 반가운 김겨울 작가의 에세이를 읽게 된 것 같다. 

 

 

 

내가 어느 날 외계인에게 납치당해 다짜고짜 한국인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면 일단 "아니 근데 진짜"로 말을 시작한 다음에, 외계인 선생님들 점심은 드셨냐고 물어보고, 양말을 찾으면서 "야항마아알이~"를 흥얼거려주고는, 떡볶이가 얼마나 맛있는지 역설할 것이다. 어느 정도 맵냐고 하면 신라면 정도 맵기라고 대답하면 된다. 내가 아무리 매 끼니 요거트에 파스타를 먹고 산삼이 새겨진 수저 세트는 애저녁에 나눔을 했더라도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 나고 자란, K의 피가 흐르는 한국인인 것이다. 나의 떡볶이 사랑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것은 어릴 때 입이 심심할라치면 한번씩 해 먹던 원형 같은 떡볶이다. 기름에 고추장을 볶는 것은 엄마에게 배웠다. 조미료를 좀 넣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엄마가 그건 가르쳐주지 않았다. 엄마가 만든 떡볶이는 희한하게 맛이 없었는데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물론 설탕이나 물엿을 바가지로 넣을 수 없었던 부모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여러분도 안다. 보호자가 해준 떡볶이가 밖에서 사 먹는 떡볶이보다 맛있다고 평하는 사람을 지금껏 살면서 거의 만나본 적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남은 날 동안 먹어봐야 할 떡볶이가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면 좀 신이 난다. 떡볶이는 많은 사람들의 노스탤지어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시대를 따라 기민하게 변화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의 한복판에서 뛰어놀기에 이만한 음식이 없다.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떡볶이라는 게 말이야~" 하면서 동네방네 지적을 받지도 않는다. 바질 크림 떡볶이 같은 게 나와도 맛있으면 그만이다.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떡볶이가 나오면 호기심으로 주문해보고, 다음엔 또 어떤 떡볶이가 나올지 기대한다. 이만하면 사실상 하나의 놀이가 아닐까?

 

그 때 먹은 철학자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근황을 살펴보니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 승승장구를 하는 바람에 체인마다 붙던 철학자 이름도 어느샌가부터는 중단된 모양이다. 마포 소크라테스점, 노원 푸코점, 사당 데카르트점, 광진 헤겔점, 중랑 벤야민점, 송파 에피쿠로스점, 하남 플라톤점 등 서양 철학자들의 향연 속에서 화곡 장자점과 신림 공자점의 분투가 귀여웠는데, 

처음 이 프랜차이즈를 만든 대표가 철학과 출신이라던데, 이 목록만 보면 서양철학을 편애했던 것이 틀림없다. 떡볶이 프랜차이즈 소개글부터 전공자의 포스가 풍긴다. "떡볶이의 이데아, 네 맛을 알라." 심지어 점포 바깥쪽 유리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맛의 중용! 맛의 이데아!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아! 스트레스 풀린다!" (철학과 대학원생으로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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