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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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문지혁 『초급 한국어』

| Mashimaro | 2021. 4. 27. 17:57

 

 

 

 

 

오늘은 작품의 주인공을 작가 자신으로 하여 쓴 소설을 작가 자신이 읽어주는 오디오북을 들었다. 제목은 《초급 한국어》. 사실 나는 이 책이 소설인 줄도 몰랐다. 오늘도 운동과 함께 오디오북을 틀었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낯익은 표지와 제목을 보고는 바로 듣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 들으면서 이건 에세이라고 생각하며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보를 찾아보니 분류가 '한국 소설'. 그러고 나서야 책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누가봐도 민음사에서 나오는 '오늘의 젊은작가' 시리즈의 표지였다.

 

처음에는 아무리 봐도 '소설'로 되어있는 장르를 눈을 비비며 다시 확인해봤다. 그리고 작품의 설명을 보니,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한 자전적 소설이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인공 이름까지 작가의 이름과 같다. 읽으면서 에세이 작가들은 참 자신의 삶을 잘 풀어놓는다...라고 감탄하며 읽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그만큼 이 소설은 작가의 삶과 소설의 영역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허구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한다. 물론 중간에 포기하게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간에 한국어 아니 초급 한국어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 꽤 신선하다. 그리고 왜 지금까지 이런 소재의 글들이 없었을까 의심할 정도로 너무 좋았다. 거기다가 요즘 클럽하우스에서 일본 친구들에게 매일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있는 나로서는 더 공감되고 깊게 감정이입 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많았던 것 같다. 심지어 이런 언어를 통해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언어 자체가 이 모든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에, 여타 다른 소재들 보다도 더 풍부하고 깊게 이야기를 음미할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이 작품이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부분도 있었는데, 그건 마지막 챕터 '그레이스 피리어드'의 마지막 문장 때문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듣고있다가 이 마지막 문장이 끝나는 순간 연구실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왈칵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이 챕터명을 보니 '그레이스 피리어드'. 작가들은 천재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지혁 작가의 프로필에서 엿본 언어전공 이력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정말 언어로 마술을 부리는 작가가 되는 것은 아무나 하는게 아닌 것 같다.

 

 

 

잘 지내냐는 말은 무력하다. 정말로 잘 지내는 사람에게도, 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도.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잘 지낸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오히려 나의 진짜 '잘 지냄'에 관해 아무것도 이야기 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수업 시간 내내 'How are you?'와 '어떻게 지내요?', 'I'm doing good'과 '잘 지내요'를 기계적으로 말하고 반복하고 따라 하게 되면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크고 분명하고 자신감 있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그 언어가 갖는 본래의 의미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누군가에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한 적이 언제였더라. 

 

그때 오락가락하던 공항 와이파이에 다시 연결됐고, 지혜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푸른색 아이메시지 속에서 나는 내가 사랑했던 모국어의 단어 하나를 영원히 잃었음을 알게되었다.

 

나는 소설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소설은 삶을 반영한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소설은 삶보다 작지 않고, 글자수도 두배나 많다. 소설이 삶에 속한 게 아니라 삶이야 말로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쓰고있는 소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우주와 영원히 써내려가는 거대한 소설의 일부임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라고 믿는다. 소설을 쓴다는 건 일종의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버튼을 누르는 행위이며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과 소설은 둘로 갈라져 다른 이름으로 저장된다. (문지혁 _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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