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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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이시다 이라 『괜찮은 내일이 올 거야』

| Mashimaro | 2018. 6. 6. 21:17






보통 책 제목과 표지만 보고 책을 골랐을때 가끔씩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일전에 읽은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가 그런 책이었는데, 이 책을 집어들면서 같은 실수를 했다. 난 이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고 자기계발서적 혹은 심리학 관련서적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면 에세이 정도? 하지만 또 한번 뒤통수를 맞았다. 이런 제목을 달아놓고 내용은 소설이었다. 어찌보면 소설의 제목으로 치면 매우 진부한 느낌도 들었다. 마치 80년대 청춘드라마 혹은 소설의 제목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사카 코타로의 《피시 스토리》를 완독한 후에 이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또 놀란 것이 이 책의 무대가 야마가타현 츠루오카 지역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소설에 등장하는 지역이나 무대가 내가 아는 환경이거나 주변지역이다 보면 관심도 더 가고 또 소설 속으로 집중해서 들어가는데 꽤나 도움이 된다. 어쨌든 츠루오카에 있는 공장에서 스타트하는 이 배경설정 때문에 나는 또 이 책을 단숨에 읽게 되었다.

그리고 또 자기계발서적으로 오해할 만도 했던 것이, 이 소설은 픽션이긴 하지만 현재의 일본사회를 잘 반영하고 있다. 가볍게 시작한 주인공들의 도보여행이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사회운동으로 커져버린 것처럼, 작가는 소설 곳곳에 일본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혹은 현황을 잘 녹여내고 있다. 블로그나 SNS가 중요한 매개가 되기도 하고, 또 이 속에 중국을 혐오하는 사람 혹은 사이트와 같은 자잘한 현실도 녹여두었다. 진부할 것 같은 스토리이지만 진부하지 않았고, 또 일본에 살고있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읽어보았을 때에도 많은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자칫 현실적이지 않은 이상향에 편중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나름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작가가 나오키상도 받았었다는데 왜 내가 여지껏 몰랐을까..라고 생각하며 작가정보를 뒤져보았는데, 이제보니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의 원작자였다. 그랬구나. 역시 내공이 있는 작가였다. 이렇게 자꾸 읽어야 할 작가 & 작품리스트만 자꾸 늘어나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번역부분에서 ‘동해’라는 표현이 굉장히 애매하게 다가왔다. 사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동해’라고 표현하는게 당연하지만, 일본에서는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나 역시 우리나라에 번역해서 출판할 때에 ‘일본해’로 표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일본열도 서쪽에 위치한 바다가 동해라고 표현되는 것이 꽤나 애매했다고 할까? 도쿄쪽의 바다가 태평양으로 표현된 것과 비교해서 저쪽바다가 동해로 표현되니 어색하긴 했다. ‘동해’나 ‘일본해’ 이외에 뭔가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독립적인 용어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걷다 보면 불황이나 휘청거리는 모습이 아니라 이 나라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돼...... 그건 그리 나쁜 게 아니야."

슈고는 숨이 차는 듯했다. 이렇게 길게 이야기한 것은 처음인지 모른다. 요스케가 거들었다.

"우리는 이 나라에 태어났지만, 실은 이 나라를 전혀 모르는지도 몰라."



네 사람은 다시 열을 지어 차분히 걷기 시작했다. 요스케는 두박자 리듬을 새기며 걸었다. 앞으로 걷게 될 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여행은 막 시작되었다.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눈 앞에 뻗어 있는 한 줄기 도로가 틀림없이 도쿄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그만큼 목적지에 가까워진다는 것. 이것이 걷기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그래, 초식남이라는 말도 있지만, 역시 우리 세대는 멀리 있는 것을 동경하지 않게 되었어. 꿈꾸는 힘이 약해졌달까."



"그럼, 소원이 이루어져서 생계 걱정이 사라지면 요스케는 무엇을 하고 싶은데?"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아직은 배우자도 자식도 자기 집도 상상 밖의 무엇이다. 하지만 단 하나 흔들림 없는 생각은 있었다.

"그래, 그렇게 된다면 지금 하는 것처럼 햇볕이 내리쬐는 먼 길을 다 같이 걸어보고 싶어. 내가 지켜줘야 할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걷고 싶어. 불안이나 공포가 아니라 내일에 희망을 걸고 누군가와 손을 잡고 걸어보고 싶어."



요스케는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은 누구나 자신의 배낭을 메고 걷고 있을 뿐이다. 여행의 조건은 조금 다르더라도 누구나 언젠가는 더 이상 걷지 못하고 길가에 쓰러지겠지. 안전이나 보험이나 연금 같은 것은 그런 여행하고는 무관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주간지 기자와 동료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기는 쑥스러웠다. 내내 인생을 체념하고 살아온 자신이 생뚱맞게 비칠 것이다. 그래도......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이 붐이 얼마나 커질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말이야, 지금 이 나라에서는 우리가 어디 사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은 중요하지 않아. 진짜냐 아니냐 하는 것도 상관없어.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블로그나 트위터의 접속 건수나 팔로우 건수란 말이야. 주목을 받으니까 점점 더 주목을 받는 거야. 유명인이니까 점점 더 유명해지는 것처럼. 웃기지만 동어반복의 세계란 말이지."



"알아. 하지만 우리가 마스터를 지킬 거야. 끝까지 함께 걸어갈거라고. 그러니까 마스터는 도망치면 안 돼. 용기가 있다는 걸 지금 보여주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거다. 8년 전에 친구를 말리지 못한 것을 지금도 후회하잖아. 지금 도망치면 똑같은 후회를 하게 될 거다."



언어로 표현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요스케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여행은 아무리 길어도 반드시 끝나는 때가 온다.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상이란 새로운 일거리 찾기나 파견회사 면접, 고용지원센터 방문이 될 것이다. 독신에 직장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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