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HONG[本]'은 일본어로 '책'이라는 뜻입니다.

Books/Book Review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 Mashimaro | 2018. 2. 5. 21:02






정말 오랜만에 종이책으로 읽게 된 책이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적응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는데, 또 적응하고나니 가끔은 종이책으로 독서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시점에 작가에 대한 충격적인 기사를 접하면서 집중하기가 힘들었는데, 최대한 배제하고 소설로서 접하기로 했다. 역시나 시기적으로는 내가 어려워하는 전쟁, 나치즘이 등장했던 시기라서 꽤나 긴장을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는 잘 읽히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거의 주인공인 니나 부슈만에 대한 이야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녀의 인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화자는 니나의 언니로, 일인칭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고, 스토리의 전개는 대부분이 슈타인의 편지(일기)와 중간중간 삽입되는 니나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화자가 언니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가 슈타인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는 터라, 아무래도 슈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느낌이 강했다. 너무나도 자유분방하고 의지가 강한 니나에 비해, 그녀를 18년 동안이나 바라보고 심지어 20살이나 많은 나이를 가진 슈타인은 찌질하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하고 소극적인 느낌이다. 니나가 삶을 역동적으로 살기 바라고 모험적인 상황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사람임에 비해, 슈타인은 현실적이고 안정된 삶을 원하는 느낌이다. 이런 대조적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니나라는 여성의 삶을 동경했다고 한다. 물론 나 역시 그녀의 뚝심이나 고집(예를들어 안락사에 대한 의견 등), 그리고 '생'이라는 것에 대한 집착(?)은 이해하고, 또 매우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나의 성향은 아마도 슈타인 쪽에 가깝지 않나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오히려 슈타인의 입장에 몰입해서 읽게 되었고, 또 니나와 언니와의 대화에서는 언니의 입장에 많이 서고 있는 내 모습을 봤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니나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너무 많았다. 가끔씩 화도 날 정도였으니까..


어찌보면 표면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지 모르지만, 제목에서 거창하게 말해주듯이 이것은 또한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저자가 겪은 시대가 그러한 시대이기 때문에 작품의 배경도 같은 설정이 되었지만, 비단 그렇게 혼란한 시기가 배경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소설은 성립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더 진지하고 밀도있게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를 파고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오히려 들었다. 아무튼, 작가에 대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부분들은 굉장히 많았으며, 왜 이 작품이 그렇게 인기가 있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방문한 남자가 슈타인 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읽고 있던 나에게는 멘붕을 선사하긴 했지만 말이다. 


발췌한 부분 중에, 개인적으로 니나의 말 중에서 욱하게 만들었던 부분은 빨간색으로 써봤다. 물론 니나가 화가나서 막 퍼붓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니나의 삶의 대한 방식은 분명 부러운 점이 있고, 나도 그렇게 되고싶은 점도 있으나, 사람은 모두 다 같은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기질의 사람도 그러한 성격과 판단에 대해 존중받을 필요가 있고, 비난할 수는 없다. ....라고 쓰고 있지만, 어쩌면 니나가 지적하고 있는 슈타인의 성향 중에서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냉정함은 아니다. 냉정이란 결함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그녀의 차가움은 젊음의 표지이며 순수함의 표지인 것이다.)



아니야, 라고 니나는 생기 있게 말했다. 아니야, 이 점에서는 나는 슈타인의 편이야. 생각해 봐. 내 시가 형편없다면, 정말로 형편없어서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감상적이고 싸구려라면, 나 자신의 내부에도 감상벽과 싸구려 경향이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거야. 누구든 그가 쓴 것과 똑같아. 이걸 분리시킬 수는 없어. 만약 언니가 좀더 날카롭게 주의해 본다면, 모든 가짜를 꿰뚫어볼 수 있을 거야. 슈타인의 말이 전적으로 옳아.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어. 내 말이 너무 맹혹하고 이기적으로 들리지? 그럴 거야.



아마 그녀는 나를 사랑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니나는 그녀가 내 안에서 보기를 원하는 것만 사랑할 수 있었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하고 니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지옥을 알고 있어. 사람이 완전히 비참해져서 결코 다시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그리고 어떤 한 사람과 영원히 더 이상 만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지옥일 거야.

그리고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는 것도, 나는 덧붙였다.

니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다시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중요해.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이야. 단지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이라고. 모든 사람들은 말해. 니나 부슈만은 현대 여성이고 해방된 여성의 전형적인 본보기이다. 그녀는 스스로 벌고 아이들을 혼자 키운다. 남자가 필요 없다. 남자처럼 분명히 사고하고 생을 움켜쥐고 마치...... 아, 모르겠어. 그러나 이것은 나의 한 부분일 뿐이야. 나는 불가피한 것에 대해 현저한 감각을 갖고 있지만, 그러나 다른 것은...... 니나는 약간 미소를 지었다. 나를 믿어줘. 그녀는 덧붙였다. 나는 평범한 여자일 뿐이야. 할 수만 있으면 결혼하고 싶어하는.



친구여, 여자들은 우리를 항상 실망시킨다네. 그러나 그는 현명하게도 -- 나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도 여자들을 실망시킨다네. 진정한 결혼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네. 체념만 있을 뿐이지.



아니야. 나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아니야, 자네 말은 옳지 않네.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아니 우리를 능가할 수 있는 여자들도 있네. 

마이트는 나에게 우울한 시선을 던졌다. 그래? 그는 슬픈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그래? 그런 여자들하고는 같이 살 수 없는 것 아냐?



10년 전에는 나 자신을 지금만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강렬한 감정의 폭발이 니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니나를 얻기 위한 투쟁은 한 특별한 여성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특수한 방향으로 나 자신의 본질을 인식하고 발전시키려는 투쟁뿐이었다. 가령, 이 여자 혹은 저 여자를 선택할 때 이 여자 혹은 저 여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본질의 이런 가능성 저런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었다. 니나는 나 자신에게서 부인하려고 한 이런저런 부분과 가능성의 회신이 아니었을까. 마음이 아프다.



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해요. 그러나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은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삶을 비켜갔어요. 한번도 모험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도 못했고 잃지도 않았어요.



니나는 자기 의견을 던지면서 방안을 빠르게 왔다갔다했다. 그리고 당신은요?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죠? 하루에 기껏해야 강의 네 시간. 나머지 시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죠. 돈도 충분히 있어요. 당신은 걱정이 없어요. 애들도 없어요. 당신의 인생은 아주 조용히 흘러가요. 당신은 상당히 안정된 지위에 있으며 쉽게 고상해질 수도 신중해질 수도 있어요. 나 같은 불안정하고 의심쩍은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낄 수 있지요. 아, 나를 그냥 내버려두란 말예요.



나는 말 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라고 말하지 못했다. 다만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니나는 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당황한 눈빛이었으나 점차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물었다. 왜 당신은 <할 수 있었다> <이었다> <하려고 했다>라고 말하는 거죠? <할 수 있다> <이다> <하려고 한다>라고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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