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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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고성준 『데스티니』

| Mashimaro | 2023. 12. 10. 19:25

 

 

 

 

 

이 책 참 오래 묵혀두었던 것 같은데... 저장되어있는 독서노트부분을 보니 2020년에 읽다가 묵혀두었던 것을 이번에 다시 꺼내읽은 셈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요즘 참 신앙서적을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정말 60%정도는 신앙서적을 읽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만큼 내가 집중하지 못했고 너무 생활중심으로 허덕거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일하면서 꽤 심리적으로 힘든 타이밍이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이 책이 생각났고, 이번에는 끝까지 다 읽어내었다. 

 

저자는 현재 목사님인데, 한때 유학을 하면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던 시기에 콜링을 받고 목회자가 되었던 것 같다. 이 과정을 읽으면서 나와 완전 반대의 케이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공부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누가봐도 연구직이 될 법한 분인데, 부르심으로인해 목회자로 결단하게된 저자와 같은 상황이 있는가하면, 나처럼 신학에 대한 권유도 받아보고, 공부는 정말 너무 싫어하던 내가.. 결국 유학과 학위를 꾸역꾸역 해내면서 현재는 연구직에 종사하고 있다. 입버릇처럼 내가 한거 아니고 하나님이 한거 보여주시려고 나같은 사람을 이리 만드시나보다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어쨌든 이 타이밍에 이 책을 읽은건 참 좋았던 것 같다. 나에게 리마인드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내가 현재 왜 우리나라도 아닌 타국에서 이러한 포지션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조금씩 다시 회복해나가야겠다는 아주 긍정적인 효과도 생긴 것 같다. 나의 데스티니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하고 묵상해봐야할 것 같다.

 

 

 

하나님의 계획은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획일화된 인생이 아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독특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획일화된 규격품 인생이 강요되는 세상 속에서 비규격 인생을 산다는 것이 모험이기는 하지만, 비규격 인생에는 하나님의 창조를 발견해가는 기쁨이 있다.

 

우리 인생에는 인생을 디자인하신 분이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성공은 사람들이 환호할 만한 화려한 그림을 그렸다는 것으로 정의될 수 없다. 창조주가 계시면 인생의 성공은 창조주가 계획한 대로 산 것으로 정의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미친 것이 맞다.” 계속 말씀하셨다. “그런데 세상 기준으로는 규격을 벗어난 베드로도, 바울도 미친 사람이었단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기에, 그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규격을 벗어난 길을 선택하는 미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성경의 인물들은 능력이 많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기도했던 사람들이며,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순종하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연약함이 있는가? 할렐루야! 당신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 신통한 은사라곤 없는가? 기뻐하라! 당신은 하나님이 사용하실 완벽한 사람이다!

 

인간을 디자인하신 분의 설명을 듣지 않고 인생을 살겠다고 하는 것은 교만을 넘어 어리석음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기억하라.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화려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디자인하신 분의 설계도대로 사는 것이다. 그분이 건네주신 성경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평강이 없는 것은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없음에서 온다. 불안 또는 두려움이란 “하나님이 없는 상태”를 지칭하는 단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떤 환경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절대 평강이 있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절대 평강’이다.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라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바로바로 초연자연적인 목소리로 응답하여주신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은 잠잠하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도가 능력이 있는 것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식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 기도를 하면 할수록 생기는 거룩한 부작용(?)이 있다. 그것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이거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 맞아?’라고 무의식적으로 묻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삶의 작은 선택 하나에도 하나님을 의식하게 된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라는 기도는 초자연적인 응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선물을 준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의식하는 태도다. 삶의 작은 선택 하나에도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는 태도 말이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 태도다. “하나님,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따르겠습니다”라는 태도. 행여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까 봐 조심하는 태도. 이 태도가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하다면 나귀를 통해서라도 말씀하실 테니까. 

 

생각해보라. 요셉이 이 소망 없는 노예의 삶 앞에 좌절하거나 포기했다면 그의 데스티니는 정말 거기서 끝나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어떤 믿음? 하나님이 나의 삶을 이끌고 계시다는 믿음! 하나님의 계획에는 우연이나 실수가 없으시다는 믿음! 나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분은 나의 인생을 그분이 계획하신 곳까지 끌고 가실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이 요셉의 데스티니를 이루었다. 하나님 안에 우연은 없다. 절대로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서는 것, 태어나고 죽는 것, 웃고 우는 것, 이 모든 것을 아시고 이끄시는 분이다. 당신이 태어난 환경, 불우한 사건들, 정말 우연일까? 재수가 없던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재수가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애굽의 총리 요셉’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이다. 데스티니를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믿음이다. 하나님 안에 우연은 없다. 그분은 내 인생을 과거에도 지금도,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붙잡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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