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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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김영하 『여행의 이유』

| Mashimaro | 2023. 7. 15. 05:59

 

 

 

 

 

김영하 작가는 참… 글을 잘 쓴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나는 김영하 작가의 유명한 소설들보다 에세이를 더 많이 읽게 된 것 같다. 그건 어쩌다보니 에세이를 더 많이 집어들게 된 단순한 이유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내가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좋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에세이는 참 쉽게 읽히기도 하지만, 또 어떤 에세이는 생각보다 꽤 많이 무거워서 한페이지 넘기기가 힘든 경우들도 있다. 작가의 성향도 있겠지만, 에세이가 추구하는 방향성의 차이도 있을 수도 있겠다. 가벼운 에세이는 술술 읽히는 맛으로 좋아하기도 하는데, 너무 가벼운 에세이의 경우는 나중에 기억이 잘 안난다.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는 나에게 있어서 매우 좋은 밸런스를 지켜주는 영역에 위치하고 있다. 읽고 나면 딱 적당한 난이도와 매우 큰 만족감을 준다고나 할까. 그래서 아무래도 그의 에세이를 찾아읽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포인트는 한가지 현상이나 개념에 대해서 많은 시각, 그리고 오래동안 생각해 온 것들을 다양하게 풀어준다는 점이다. 이건 내가 인류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굉장히 좋아하는 글쓰기 혹은 시점인데, 이렇게 풀어가는 방법이 바로 에세이의 매력을 극한으로 올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렇게 ‘여행’을 테마로 한 것 처럼, 소재 자체는 결코 누군가에게 편향되지 않고 일반적인 소재를 가지고 온다. 그런데 읽다보면 누구나 다 아는 ‘여행’이 누구나 다 경험한 여행이거나,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닌 경우가 있다. 다 아는 얘기였는데 이렇게 풀어갈 수 있다고…? 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이건 분명 단시간에 되는 것이 아닌, 작가가 오랜시간 생각하고 글쓰고 훈련해 온 시간이 선물해주는 아웃풋일것이다. 이런 것이 작가의 내공이 아닐까 싶다. 진지한 생각과 글인데 무겁지않게 풀어내는 스킬, 그리고 그것을 확장해가며 스토리로 이끌어가는 글빨… 매우 부러우면서 너무 좋다.   

 

 

 

작가는 대체로 다른 직업보다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우리들의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로 다녀오는 여행이다. 그 토끼굴 속으로 뛰어들면 시간이 다르게 흐르며, 주인공의 운명을 뒤흔드는 격심한 시련과 갈등이 전개되고 있어 현실의 여행지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아폴로 8호가 달 궤도에 진입한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 발행된 뉴욕타임스에 ‘저 끝없는 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riders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인류가 지구의 승객이라는 비유는 지금으로서는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당시에는 읽자마자 무릎을 칠 만한 것이었다. 승객은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왔다가 떠나는 존재일 뿐이다.

 

철학자 알폰소 링기스는 여행에서 우리가 낯선 이에게 품는 신뢰, 그것의 기묘함에 대해 썼다.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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