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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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우은진, 정충원, 조혜란 『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

| Mashimaro | 2022. 4. 29. 22:15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내가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가 있을까. 구석기고고학을 하고있고, 시시각각으로 미친듯이 업데이트 되고있는 최근의 DNA, 게놈관련 고인류학 논문들을 따라가지 못해서 허덕대고 있는 내 눈에, 이런 주옥같은 책이, 심지어 대중서가, 심지어 저자가 한국인인 이런 친절한 책이 눈에 띄었는데 어떻게 이 책을 안읽고 지나갈 수 있냔 말이다. 사실 스반테 페보의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를 몇년째 책장 속에 묵혀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을 발견한 이상 당장 집어들고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류의 기원》 이후로 내가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전문가가 쓴 대중서 리스트(고인류학관련)에 이 책을 올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네안데르탈인은 정말 고인류학계에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야만인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호모 사피엔스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상당한 존재감과 종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구석기시대에 있어서도 이른시기의 구석기시대와 후기구석기시대를 구분짓는 기로에서 굉장히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며, 사실상 이 분야에서 가장 핫한 이슈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전공자의 관점에서 봤을때 아무래도 가장 쇼킹할 수 있는 부분은 인류진화의 이미지가 우리가 알고있는 것 처럼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에서 호모로, 그리고 호모 하빌리스 - 호모 에렉투스 -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 호모 사피엔스 뭐 이런식으로 점차적으로 단순진화해가는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아마 대중들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이 책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이긴 하지만 상당히 최신자료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쪽 분야가 시시각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는 자료가 많아서 완전 최신이라고 표현한다고 조금 모순일 수 있지만, 책이 쓰여지기까지의 연구자료가 상당히 많이 반영되어있고 또 이를 굉장히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인상을 받았다. 세명의 저자들의 이력이나 소속을 보아도 이러한 정보를 발란스있게 전달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 고인류학이라는 학문의 뼈대를 잡고 현재의 트렌드를 이해하는데 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단 몇 퍼센트일지라도 우리 몸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우리와 네안데르탈인이 언제 갈라졌으며 서로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연구는 1997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분석 결과가 최초로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연구들은 현재 인류의 기원과 진화를 탐구하는 학문 분야에서 가장 핫한 주제들이기도 하다.

한때 네안데르탈인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 몸속의 유전자 안에 완벽하게 살아남았다. 지금껏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에게 생소하기 짝이 없는 외국어 지명에서 유래된 낯선 용어에 불과했다. 적어도 우리가 그들의 뼈를 들여다보기 전에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뼈를 들여다보는 순간 그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사람의 이웃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줄 것이다. 또 우리의 이웃 인류였던 네안데르탈인의 뼈를 파헤치면서 인류 진화사를 통틀어 가장 스마트한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되기까지 우리의 몸은 왜 이렇게 디자인된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으리라.

어릴 때 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순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호모 하빌리스가 진화해서 호모 에렉투스가 되고 호모 에렉투스가 진화해서 네안데르탈인, 또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해서 크로마뇽인이 된 것이 결코 아니다. 인류 진화는 계단을 밟고 오르는 것처럼 한 단계가 지나면 다음 단계가 이어지는 식으로 일어나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정해진 방향도 없다. 요즘도 혹시 이렇게 알고 있는 이들이 있을까?

이 대목에서 좀 생뚱맞은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인간과 인간다움을 정의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어떻게 생겨야, 어떤 행동을 해야만 끝까지 사람이라 부를 수 있고 또 불릴 수 있을까? 아무리 똑똑한 천재 침팬지라 할지라도 침팬지는 어디까지나 침팬지이다. 하지만 유전자 수준에서 보자면 침팬지는 우리와 98.7퍼센트의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에 고릴라나 오랑우탄보다 우리와 훨씬 더 가깝다. 이런 이유로 침팬지를 사람과 같이 묶어서 호미닌hominin이라는 분류군에 집어넣기도 한다.

우리는 수업시간에 생물을 분류하는 범주 체계로 ‘종-속-과-목-강-문-계’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다. 종 위에 속이 있고 그 위에 과…… 이렇게 순차적으로 계까지. 이 개념들을 배울 땐 실제로 모든 생물을 이렇게 분류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칼로 무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되는 이 범주가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생물계의 모든 생물들이 이런 범주 속에 깨끗하게 담겨 정리될 수 있는 걸까? 현실세계에선 절대 그럴 수 없다. 하물며 현생 생물도 이러한데 화석으로 남은 뼈만 가지고 종 분류를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고인류 화석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수년 동안 지루하고 고된 작업을 이어간 끝에 운 좋게 화석을 한 점이라도 찾아낸다면, 그 순간부터 고인류학계에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이건 로토 당첨과도 같은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이렇게 찾은 유물을 냉철하게 객관적으로만 판단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학자이기 이전에 사람이기에 자신이 발견한 화석을 좀 더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은연중에 생기기 마련이고, 때론 그러한 마음이 연구에 작용할 때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남의 연구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매의 눈으로 평가의 공정성을 따지기 마련이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닥터 본즈는 그 나이가 되면 자기 뼈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얼굴이든 뼈든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조건이란 게 있긴 하지만, 마흔 정도가 되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따라서 얼굴도 뼈도 삶의 굴곡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닥터 본즈들은 이처럼 뼈에 남겨진 삶의 굴곡들, 특히 외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흔적들을 이용해서 옛사람들의 삶을 평가하기도 한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이 절멸하거나 진화하는 것처럼 네안데르탈인도 그중 하나의 길을 택했다. 그 결과 그들은 절멸했고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의 유일한 인류로 살아남아 계속 진화 중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류진화사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그만큼 진화의 역사는 다이내믹하다. 다이내믹했던 진화사만큼이나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우리의 평가에도 많은 기복이 있었다. 한때 ‘미개한 원시인’의 대표주자로 인식되었던 네안데르탈인이지만 오늘날 그들은 거의 모든 면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특히 최근 10여 년 남짓 계속 되어온 유전체학의 혁명으로 그들은 야수에서 인간성을 갖춘 사람의 이웃으로 180도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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