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HONG[本]'은 일본어로 '책'이라는 뜻입니다.

Books/Book Review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Mashimaro | 2022. 4. 30. 09:40

 



이 책 또한 내가 참새방앗간처럼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이었다. 내가 업으로도 삼고있고, 또 나의 취미이자 습관이기도 한 '기록'에 대한 이야기라니. 물론 분명 뻔하고 아는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이것은 알면서도 읽고싶어지는 책이겠다 싶었다. 그리고 남의 기록을 훔쳐보는 일, 혹은 남이 어떻게 기록하는지 소개받는 일은 언제나 질리지가 않는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고 그리고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솔직히 공감포인트가 너무나도 많았고, 나 역시도 저자처럼 예전에는 무언가를 기록하는데 계속 실패해왔던 사람으로서 그 과정까지도 너무 닮아있는 점이 많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일 자체가 ‘기록’을 해야하는 직업이 되다보니 어느정도 후천적으로 학습된 듯한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나의 개인 삶의 영역에서 기록을 지속하고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저자와 비슷한 루트를 지나왔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공감되는 포인트는, 기록은 현재의 나와 마주앉는 시간이라는 것. 정말 하찮은 것을 적기도 하고 억지로 꾸역꾸역 적고있기는 하지만, 너무 웃기게도 이러한 행위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 나의 삶의 패턴과 질이 현저하게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지금 책을 다 읽고나서 느끼게 된 것이지만, 이러한 순기능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함께 알고 공유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자꾸 이러한 책을 찾아읽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도 그저 딴나라의 이야기 혹은, 이러한 디지털 시대에 심지어 펜으로 일기를 끄적거리는 것을 매우 비효율적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하는 사람들은 안다. 이것의 즐거움과 순기능을. 그리고 이것이 내 삶의 미치는 영향력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있다. 그래서 아마 함께 기록하는 이들을 찾아보고 함께 공유하는 이러한 책들과 컨텐츠들을 계속 놓치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기록하는 데 자주 실패해온 사람입니다. 시작은 초등학교 일기장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검사 맡기 위해 쓰는 일기가 즐거울 리 없었어요. 이런 걸 뭐 하러 매일 써야 하는 걸까, 싶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는 시간을 그저 내 앞에 한없이 쌓여 있는 것으로면 여겼으니까요. 어른이 된 지금은 압니다. 시간은 금세 흩어지고 또 사라져버린다는 걸.

그럴 때 우리가 놀라는 것은 일기의 내용이 아니라 시간 때문일 겁니다. 마치 수령이 몇백년에 이르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 섰을 때나, 시간의 침식 작용으로 이뤄진 절벽 같은 것을 바라볼 때 느끼는 기분과 흡사한 것이죠. 오랫동안 한자리에 쌓여온 시간에 감탄하는 것. 그 시간을 볼 수 있도록 남겨둔 한 사람의 성실함에 감탄하는 것. 일기의 대단한 점은 아무래도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하루치는 시시하지만 1년이 되면 귀해지는 것.

할아버지들 역시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별 이야깃거리도 안된다고, 그냥 내가 보낸 하루를 짤막하게 적어두는 것뿐이라고. 사실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위로 시간이 쌓인 겁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며, 누군가는 적어서 남겨두고 누군가는 흘려보니는 바로 그 시간요. 시간이 쌓인 기록은 사실 그게 무엇이든 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삶이란 건 원래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이야기니까요.

매일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훗날 돌아볼 기록이 과거를 반성하게 해주어서가 아니라 현재에서 나와 마주 앉는 시간을 꾸준히 보내기 때문일 거에요. 그리고 그 시간은 인생에서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쓸데없이 힘을 빼지 않도록, 반대로 내게 중요한 것들은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평범한 하루 속에도 늘 이런 순간들이 숨어 있습니다. 잘 산다는 건 다른 게 아니라 결국 좋은 순간들을 잘 기억해두는 일이 아닐까 싶어, 이런 순간을 주워다 5년 다이어리의 한 줄을 할애해 적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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