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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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존 포츠 『카리스마의 역사』

| Mashimaro | 2017. 3. 15. 01:48





분량이 많아서 읽는데 좀 오래걸리기는 했지만, 책 자체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서신(고린도전서)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가 단절되었다가, 20세기 초에 막스베버가 다시 사용하면서 그 의미가 변화되고, 현재까지 계속해서 사용되면서 '카리스마'의 이미지가 정착되어가는 과정들이 흥미로웠다. '카리스마'는 우리가 흔히 아는 '카리스'라는 어원과 연관이 있다. 실질적으로 저자는 '카리스'라는 말에는 은혜, 선물 등의 많은 의미도 내포하고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사의 의미가 강하다는 설명과 함께, 대부분의 경우를 신약성경에 나오는 '은사'에 대한 부분과 매치시키며 설명하고 있다. 즉, 성경 안에서 '은사'로 표현되고 있는 부분은 거의 '카리스마'로 인식하면 될 정도였다. 이러한 연유로 이 책의 전반부 절반, 아니 그 이상의 분량이 신학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어찌보면 책 전체에 걸쳐서 그리스도교라고 표현되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계속해서 서술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어원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초월적인 은사의 개념이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고는 설명이 불가능 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카리스마라는 개념이 소멸해가는 과정이었다. 2-3세기에 이르면서 구전되어 이어지는 복음과 메시지의 내용들이 성경이라는 책, 즉 텍스트로 전달되기 시작하면서,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카리스마있는 예언자, 전달자들 (카리스마가 있는 자들)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다. 따라서, 카리스마의 필요성 자체가 점차 사라지게 되고,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교회시스템으로 만들어져간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또한, 이로인해 점점 카리스마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고 단절되는 시기에 이른다.


이후 막스베버가 제창한 '카리스마'의 개념은 세속적인 이미지가 가미되는데, 여기서도 초자연적 혹은 신비함에 대한 의미지는 지속된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으로 책의 중후반부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나타나는 카리스마의 개념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오순절파, 카리스마파 등으로 나타나는 교회사도 흥미로웠다. 여기서 세계에서 가장 큰 오순절파 교회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이름도 언급된다. 이후 나타나는 카리스마의 개념은 신비적인 개념 뿐 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요구들, 지위의 영향, 매스미디어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고, 이로인해 현대에 생겨난 '카리스마'의 개념들까지 설명을 시도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저자가 가지고 있는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이 크게 한 몫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에 통용되는 카리스마의 개념에서 내가 특히 공감했던 부분은 현대 학자들의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견해인데, 「카리스마 잇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구분하기 쉽지만, 그 카리스마가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모호하다는 것.」 이라는 부분에 많이 공감했다. 아무튼, 이 사도바울이 사용한 개념부터 현재 버락 오바마에게 부여되었던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대한 부분으로 이어지는 내요을 참 흥미롭게 읽었다. 혹여 책의 페이지수나 겉모습에 겁먹어서 지레 포기해버리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 겁내지 말라고, 나름 재미있는 책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또한, 카리스마라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은사적인 부분으로 시작된 것임을 알게되면서, 결국 우리가 말하는 카리스마적이고,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에 관련된 개념으로 정의되어지고 있는 것들이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확인하는 또 다른 감동이 있다. (이건 순전히 크리스천의 입장으로 느낀 나의 개인적인 감상일 수도 있다.) 나 개인적으로는, 내가 부여받은 은사가 결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묵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카리스마'를 하나님의 은총이 담긴 재능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했다. 그 말은 고대 그리스어인 카리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는 구원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은총으로서 사도 바울의 신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카리스마'라는 말을 이용하여 신의 은총으로 얻게 되는 영적, 초자연적 능력을 포함한 다양한 '재능'을 나타냈다.



베버의 뒤를 이어 현대에서 사용되는 카리스마는 1세기에 사용되던 그 단어에 뚜렷이 담겨있던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의미가 상실된 상태다. 미디어의 해설자들이 어떤 정치인의 카리스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보통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이나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카리스마는 여전히 선물(gift)로 간주되지만, 신에게서 유래했다는 언급은 빼고, '타고난(gifted)'의 의미로 간주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것을 이성적으로 분석하여 만족스러울 만큼 설명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은 어떤 타고난 재능의 결과인가? 문화는 그 부분에서 확신하지 못한다. 혹은 판단내리길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 때문에 문화는 카리스마라는 말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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