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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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 Mashimaro | 2021. 5. 6. 19:00

 

 

 

 

 

이 책을 읽은 지인의 소개로 가장 먼저 이 책을 접했고, 제목에 바로 꽂혀서 주문을 했던 책이었다. 그리고 꽤 지난 이제서야 이 책을 읽었는데, 역시나. 진작 읽을 걸 그랬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밑줄을 미친듯이 긋게 되는 책이었다. 사실 이미 지인으로부터 대충의 감상은 듣고 읽기 시작했던지라 자기반성을 할 준비와 저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겠다는 준비운동을 하고 시작하긴 했었다. 그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찔리고 와닿는 내용들이 참 많았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소수자의 입장에서 쓸 것을 대놓고 티내면서 글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점이 나에게는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언급되기는 하지만 '차별'이라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차별하는 쪽에 서있으면 자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저자는 정확히 이야기한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고.

 

우리는 어떤 사람을 ‘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고정관념은 무언가 ‘잘못한’ 사람에 대해서도 존재한다. 범죄자를 생각할 때 사람들은 영화에서 본 극단적인 악인을 상상한다. 실제로 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를 보고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고 반응하는 것은 자신이 범죄자에 대한 과장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차별도 마찬가지다.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와 같이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는 악랄하고 기괴한 모습을 생각하고 있다면, 자신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고정관념을 갖기도, 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이 말에 굉장히 공감했다. 아마도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자각해야하는 점은 내가 이미 충분히 차별을 일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궁금해서 잠깐 감상들을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의외로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었다. 이건 이전에 《82년생 김지영》을 읽고나서 놀랐던 느낌과 비슷한 정도였다. [관련포스팅 : 82년생 김지영. 그리고 우리의 온도차] 이렇게 심플한 이야기에 또 이런 비판적인 의견이 쏟아질 수 있다니...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하고싶은 이야기도 알겠지만, 이 책이 과연 그런 잣대를 가지고 읽어야 하는 책인걸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의 제목이 왜 《선량한 차별주의자》인지를 한번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맥락의 제목을 가진 《나쁜 페미니스트》가 생각나기도 했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논리적이고 비논리적인것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먼저 '차별'이란 무엇인지, '차별'이 어떠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차별'에 대해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로 이 책을 읽는것이 잘못되었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혹여 책을 읽으면서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일단 저자를 향하기보다 그 불편함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저자의 이야기가 맘에 들던 들지 않던, 논리적으로 보이든 비약적으로 보인든, 일단 열린 마음으로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생각해보면 차별은 거의 언제나 그렇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 덕분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나서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차별은 분명 양쪽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에게 부정의함에도, 희한하게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된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산술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차별을 당할 때가 있다면, 할 때도 있는 게 아닐까?

 

당혹스러웠다. 이 두가지 표현은 얼핏 칭찬이나 격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칭찬과 격려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말을 한 당사자에게 이런 표현이 듣는 사람에게는 모욕적일 수도 있다고 알려준다면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한다면 더이상 문제가 아닌 걸까? 모욕을 한 사람은 없고 모욕을 당한 사람만 있으니, 모욕을 당한 쪽에서 감내하거나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걸까?

 

장애인에게 하는 ‘희망을 가지라’는 말 역시 전제 때문에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희망을 가지라는 건 현재의 삶에 희망이 없음을 전제로 한다. 장애인의 삶에는 당연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삶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 모욕적이라고 했다. 설령 장애인이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건 이상하다. 장애인이 희망을 가져야 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변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토크니즘은 차별받는 집단의 극소수만 받아들이고서도 차별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회가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고, 노력하여 능력을 갖추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다는 기대를 주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은 이상적인 평등의 상황과는 꽤 먼 상태임에도 평등이 달성되었다고 여기는 착시를 일으킨다.

 

여성이 주류 집단이라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난다. 성별로 인한 지위 외에도, 사람은 수많은 다중적 지위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앞서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한곳에만 서 있는 게 아니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감각의 차이는 두 집단을 가르는 경계에서 생긴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 즉 ‘그들’을 쉽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적으로 자신이 속한 내부 집단은 복잡하고 다양하고 더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반면 외부 집단은 훨씬 단조롭고 균질하며 덜 인간적으로 보인다. 내부 집단과 외부 집단의 차이를 과장하여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를 중심으로 집단을 가르는 마음의 경계를 따라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만들어진다.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도 이 마음의 경계에 따라 달라진다.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은 외부의 시선에서 시작되지만, 그 구성원들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내면의 시선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집단에 소속감을 가지면서 그 집단을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당신은 차별이 보이는가? 구조적 차별은 우리의 감각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인식하기 어렵다.

 

보상이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 승자가 모든 기회와 존경을 독식하고 패자는 모든 모멸과 배제를 감수하도록 만드는 것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한가지 교훈은 분명하다. 때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상처를 주는 잔인한 의미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격렬한 시위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룩한 역사와 별개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방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집회와 시위를 공공질서에 해로운 행위라고 본다.

 

다양성을 강조하는 말로 종종 사용되는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라는 흔한 구호도, 여기서 ‘다름’이 주류 집단의 기준에서 ‘일탈’된 무언가를 지칭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틀림’을 전제하는 형용모순이 된다.

 

이런 긴 논의는 결국은 식상할 정도로 당연한, 하지만 그래서 더 어려운 결론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모두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우리를 본질적으로 가르는 차이란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사람으로서 보편성을 공유하지만, 세상에 차별이 있는 한 차이는 실재하고 우리는 그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불평등한 사회가 고단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도록 부당하게 종용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차별을 당하는 개인에게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불안하다. 아프거나 실패하거나 어떤 이유로건 소수자의 위치에 놓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 원치 않게 소수자의 위치에 놓였을 때 그 사실을 부정하며 고통을 감내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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