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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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에릭 케스터 『하버드 불량일기』

| Mashimaro | 2020. 5. 4. 15:31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병맛에세이 라고나 할까? 분명 에세이이고, 또 공감되는 생각도 많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마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었을 때와 같이 '병맛'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물론 나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좋아한다. 병맛을 좋아하는 것인지, 작가의 필력을 좋아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에세이 역시 참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뭐 사실 표지와 제목을 보고서는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지만, 내가 상상하던 수준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은, 그래서 반전 아닌 반전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부분이지만, 저자는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하버드대학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스포츠맨이고, 그러면서도 성적을 유지했던 저자는 하버드대학 입학에 성공하는데, 누구나 일류대학에 진학하면 느끼는 것 처럼, 더이상 그는 우등생이 아니었던 것이다. 학교 내부에서는 열등감을 느껴가며 원치않는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또 외부로 나오면 주변사람들이 하버드대학생이라는 타이틀에 갖고 있는 선입견과의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느낌이 더욱 더 실감나게 전달되는 것은, 이 책 전반에서 나타나는 말투, 아니 서술체라고나 할까? 너무 필터없이 막 던지는 느낌이다. 어떤이는 거북스럽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러한 글투가 이 책의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건 작가의 역량인지 번역가의 역량인지는 알 수 없지만, 느낌이 꽤 잘 전달되었다. 아마 내가 이 책을 읽고 병맛에세이라고 느낀 부분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저자는 하버드라는, 우리보다는 많이 특별한 환경속에서의 열등감 혹은 자신의 맘대로 되지않는 청춘시기의 일기를 적었지만, 특별히 공부 잘하는 집단이라는 요소만 제외한다면, 우리 모두 어디에서든 젊은시절에 느낄 수 있는 고민이 들어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대학 1학년때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 성적에 대한 고민, 장래에 대한 고민, 여자친구 만들기 등등 누구나 대학생이라면 겪었을 내용인 것이다. 물론, 첫 에피소드의 등장하는 알몸사건은 좀 특별하지만서도... 마지막에서 저자는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적었다. 과연 하버드에서 고고학을 계속 공부했을까? 나와 전공이 같다보니까 더 신경이 쓰이기도 하는 것 같다. 저자소개에 하버드대학 학사라고 나오는 것을 보니, 다행히 무사히 졸업은 한 것 같다. ^^




물론 나는 그날의 참담한 상황이 향후 내가 겪을 수많은 재앙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나는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고, 하버드에 입학했다는 사실만으로 내 인생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순진하게 믿었다. 하버드 입학이 미래에 엄청난 성공과 행복,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지를 원하는 만큼 사서 입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적분학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학자였고, 연구를 지속하려고 조국을 떠나 하버드로 옮겼다. 그리고 하버드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두어 개 과목을 가르쳐야 한다는 암담한 소식을 들었다. 그의 학문적 성과를 보면, 그는 이른바 하버드가 자랑하는 전 세계 최고의 교수진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하버드는 최고의 교수와 최고의 교사가 전혀 다르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하버드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특기’로 구분됐다. 하버드에 입학하려면 아주 뛰어난 성적뿐만 아니라 무조건 특기, 즉 남과 다른 특별함이 하나씩은 있어야 했다.


트립의 말이 맞았다. 하버드에서 부정행위는 뛰어난 학업 성과만큼이나 전통이 깊었다. 거짓말, 컨닝, 배신은 하버드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이었고, 하버드가 뛰어난 정치인들을 유달리 많이 배출한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실제로 하버드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소수의 재수 없는 하버드 학생들을 혐오하는 데 너무나 빠져 있어서 내 주변의 정말로 뛰어난 학생들을 보지 못했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108킬로그램을 들어 올린다는 거야. 그런데도 너는 아직도 겁에 질린 꼬마 계집애처럼 시합을 하지. 그건 마치 자기보다 더 잘나고, 더 자신감이 넘치고, 더 많은 것을 성취한 녀석들한테 붙어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야. 이 세상에 잘난 녀석들은 넘쳐나. 그런데 그런 잘난 녀석들 중에서 자신의 몸무게와 맞먹는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는 녀석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지금 당장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건 그만둬. 정말로 네가 상대방이 얼마나 강한지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천만에. 자네가 유일하게 아는 거라곤 너 자신이 자기 몸무게만큼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뿐이야. 그리고 그 정도면 아주 강한 축에 속하는 거고.”


사실 나는 언제부턴가 하버드의 수업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고, 잠정적으로 고고학을 전공하기로 결심까지 했다. 고고학을 전공으로 삼은 이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가 접목된 학문이기 때문이다. 바로 글쓰기와 흙장난이다. 전공은 2학년을 마칠 때까지만 결정하면 됐기에, 내가 전공을 결정했다는 건 하버드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2학년을 다닐 생각을 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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