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들었다놨다.. 읽을까말까..를 고민했던 책. 이 책의 내용을 접할 자신이 없었거든.. 결국에는 모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읽게 되었다. 처음부터 문학이네, 문학이 아니네.. 그러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처럼. 이 책은 저자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저자의 서술은 정말 일부분이고, 대부분은 인터뷰한 내용들을 나열해 둔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엔 이걸 내가 계속 읽어야만 할까? 하는 고민도 많았지만.. 나름 꾸역꾸역(?) 읽어내었던 것 같다.
나도 역사, 혹은 역사소설을 좋아하고.. 전쟁 이야기는 무수히 많이 들었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전쟁은 어떤 서사나 이념, 큰 사건이라기 보다. 한사람 한사람의 인생사로 보였다. 그렇다. 전쟁도 사람이 하는거였다. 중요한 사람의 이야기가 빠진 전쟁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었지만, 난 이 책이 그보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더 감정이입이 되고, 더 실감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닌 진짜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는지도...
불과 20세기 중반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가 일제시대의 고통을 겪었던 그 시기.. 모두가 고통스러웠던 그시기.. 난 이 책을 '7년전쟁'과 병행해서 읽고 있었다. 16세기 말에 일어났던 아시아의 전쟁과 20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일어났던 전쟁의 이야기... 러시아쪽 군인들이 침략한 독일사람을 만났을때의 감정.. 혹은 상황들... 내가 읽고 있는 임진왜란의 이야기에서 일본에 침략당한 우리의 이야기... 그리고 난 이 책을 일본에서 읽고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거리나 카페에서.. 일본사람들 사이에서 한글로 된 이 책들을 읽었다. 기분이 많이 이상하다. 그리고 신기하다.. 그래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보았던 것은 전쟁보다도 그 안의 사람들의 삶이었으니까.. 어쩜 그건 지금도 진행중일지도..
이 책의 후반부를 읽은 것은 내가 발굴현장에서 돌아오는 전철안이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상, 현장에서 작업복인 채로.. 바지와 신발은 흙투성이가 되고, 얼굴을 새빨갛게 탄 땀냄새가 풀풀나는 모습으로 전철을 타고 귀가를 하며 책을 읽었는데... 시내에 가까이 올수록, 그리고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 탄 지하철로 갈아타면서 내 모습이 참 이상해보였다. 내 모습과 내 생각 조차도 이러했는데.. 당시, 군인의 모습으로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헷갈리는 그 모습, 엄마조차도 못알아볼 정도로 변해버린 그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온 그녀들은 어떠했을까...? 작가가 계속해서 말하는.. 난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는 그 말의 의미가 어쩌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혹시 그녀들을 만나면 꼭 한번 안아주고 싶다.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감춰져 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원치 않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 안에 생명을 품고, 또 생명을 낳아 기른다. 나는 여자에게는 죽는 것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가혹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녹음기는 사람의 말을 녹음하고 어조도 그대로 담아낸다. 짧은 침묵소리, 울음소리, 망연자실해하는 소리까지도. 나는 이야기란 게 원래 시간이 지나 글로 옮겨질 때보다 말로 뱉어질 때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말할 때 그 사람의 눈빛과 팔의 움직임을 '녹음하지' 못하는 게 늘 안타깝다. 대화하는 동안 드러나는 그들의 삶, 즉 그들 본래의 삶과 그들 각자의 삶을, 그들의 '텍스트들'을 녹음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순간 스치는 고통의 표정 앞에서 간혹 나도 모르게 '사람은 고통이 있기에 아름다운 건 아닐까'라는 불순한 생각을 품을 때가 있다. 그러고는 나 자신에게 흠칫 놀란다......
길은 오직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기껏 증오하는 법을 익혔는데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오래전에 잊힌 감정들을, 잊힌 말들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전쟁의 사람이 전쟁의 것이 아닌 사람이 되어야 했다......
이 책은 전장에서 직접 총을 쏘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책에 담긴 압도적인 목소리와 함께 '전후세대'라는 말은 의미를 읽는다. 우리는 전장의 포연과 비참 속에 있다. 전쟁이 없는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렉시예비치와 함께 이렇게도 말해야 한다.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현우(『로쟈의 인문학 서재』 저자) 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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