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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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ook Review

이언 매큐언 『속죄』

| Mashimaro | 2017. 11. 9. 12:42






사실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는 잘 몰랐다. 그러던 중, 리디북스에 올라와 있던 '넛셸'이라는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책을 위시리스트에 넣어두고 한참을 지났는데, 좋은 기회를 만나 이 '속죄'라는 책을 선물받게 되었다. 워낙에 추천해주신 분들이 반전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하고, 또 전반부는 지루할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뒷부분에 펼쳐질 반전을 기대하며 꾸역꾸역 읽어낼 준비를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음.. 난 생각보다 1부 부터 나름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1부의 분량이 전체의 절반을 넘을 정도로 대부분을 차지하는데다가, 이틀동안에 일어난 일을 각 사람의 시선과 심리를 통해 서술하는 것이니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름 정해진 공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다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읽었다. 양이 적은 작품이 아닌데, 생각보다 빨리 읽었던 것도 그런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튼, 모두가 반전이 있는 작품이라고 해서 긴장하며 꼼꼼하게 읽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예상이 되는 상황이라서 그렇게까지 긴장감을 갖고 읽게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역시나 결론은 그러했고, 나는 끝까지 번뇌하는 브리오니보다 여전히 롤라에게 더 많은 분노를 느끼면서 읽었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에필로그에 있다. 에필로그에서의 반전은 이미 마지막 3부를 끝맺으면서 가르쳐주고 있기는 하지만, 에필로그를 통해서 그 자세한 과정을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뒤통수를 맞는것과 같은 정도의 엄청난 반전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 반전은 진짜 '속죄'라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해준 것 같다. 여전히 삶 속에서 정답은 없고, 또 각각의 상황들 속에서 각자의 해석은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과연 '최선'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다. 브리오니의 최선은 아마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그들의 생각과 상황과 아픔에 최대한 공감하려고 했던 노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가 굉장히 성실히 상황과 심리를 묘사하는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때문에 작품 속에 굉장히 깊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각 등장인물들의 심리속으로 함께 들어간 느낌이었고, 또 1930년대의 그 상황에 너무 깊숙히 발을 들여놓아서, 1999년이 되었을때의 현실감으로 돌아오는 것이 꽤나 힘들었다. 1999년은 내가 이미 경험한 그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붕 떠있는 느낌이랄까? 그러고보면 소설 안에서 보여지듯이, 2차 세계대전과 1999년은 함께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멀지 않은 시기인데, 마치 늘 역사속의 한 장면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 시대를 사셨던 우리 할머니가 아직도 이렇게 살아계신대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튼, 책을 덮은 지금에도 난 롤라와 마셜이 가장 밉다. 그건 아마도 브리오니의 필력, 혹은 자칭 속죄라고 표현하고 있는 그 작품을 통한 소심한 복수가 통한 것일지도 모른다. 속죄라는 것에 대한 고민과 함께, 소설이라는 '픽션'을 사용했을때 그것이 또 다른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또 새삼 해보게 되었다. 아무튼, 이걸로 이제 위시리스트에 넣어두었던 '넛셸'도 고민없이 구매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애는 집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들이나 읽으면서 케임브리지서 삼 년을 허송세월하고 돌아왔다. 오스틴이나 디킨스, 콘래드 같은 작가들의 작품은 모두 서재에, 그것도 전집으로 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읽는 책들을 전공으로 읽어놓고도 어떻게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브리오니는 그의 무죄 입증을 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쳐왔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그애 자신을 위한 것이었으며, 양심상 도저히 견디기 어려워지자 자신의 범죄에 대해 면죄부를 얻으려는 것이었다. 그가 고마워해야 할까?


아직은 내가 무엇을 보든지 예전만 못하고 저속하다고 헐뜯으려는 태도-나이든 사람들의 공통된 습관이 아닌가!-를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누가 내게 『속죄』의 주제를 묻는다면, '폭력'이라고 말하겠다. 『속죄』는 전쟁이라는 이름의 폭력, 다른 이의 말에 귀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의 눈과 판단만 믿는 오만함이라는 폭력,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휘두르는 폭력까지 실감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_한정아(역자후기)


이언 매큐언은 9・11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직후 『가디언』지에 다음과 같은 논평을 실었다. "비행기 납치범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승객들의 생각과 느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을 계획했더라도 끝까지 진행시키지 못햇을 것이다. (......)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떻게 느낄까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의 본질이며, 동정과 연민의 핵심이고, 도덕성의 시작이다." 세상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상상력과 세상을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주는 상상력...... 그 경계는 어디인가. 이언 매큐언은 참으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시하는 작가이다. _한정아(역자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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