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本]'s World

'HONG[本]'은 일본어로 '책'이라는 뜻입니다.

Books/Book Review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 Mashimaro | 2022. 2. 5. 13:46

 

 

 

 

 

내가 일본소설을 고를때 '나오키상'이 기준이 되는 것처럼, 한국소설을 고를때 하나의 기준이 되는 것이 '오늘의 젊은작가' 시리즈이다. 나오키상 수상작이 대부분 나를 배신하지 않았던 것 처럼, 내가 찾아읽었던 오늘의 젊은작가 시리즈에 실린 작품들 역시 거의 좋았던 것 같다. 심지어 이번에 읽은 윤고은작가의 《밤의 여행자들》은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주관하는 대거상의 번역추리소설 부문을수상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사실 이 책은 장르가 참 모호한 느낌도 든다. 대거상을 수상한 것을 보면 해외에서는 추리소설로 분류가 되는 듯도 하고, 또 읽다보면 후반부로 갈수록 디스토피아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초반부터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왠지 극현실주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작가는 현실을 반영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작가의 필력이 좋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 같다. 

 

소설의 분위기는 생각만큼 밝지는 않다. 물론 처음부터 주인공 요나의 회사생활이 틀어지는 에피소드로 시작하니 현실 직장인의 비애를 다룬 이야기처럼 느껴지며 약간 다운된 분위기로 시작한다. 물론 끝까지 소설의 분위기가 밝아지지는 않지만, 중반부터는 전혀 다른 느낌의 어두운 분위기가 다가온다. 폴Paul로 대표되는 존재, 보이지 않는 손, 외딴 마을 무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 황당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어디에선가 있을법한 일이어서 더 어둡고 비참한 느낌이 든다. 솔직히 좋아하는 분위기가 장르는 절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쉬지않고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윤고은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었는데, 요즘 한국의 젊은 작가분들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와는 또 한끗 다른 그런 느낌의 작품이었던 것 같다. 물론 작가에 대해서 더 궁금해졌고, 조금씩 더 찾아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해설을 보면 이 작품이 이전 작품들보다 많인 어두운 색채를 띄고있는 경향도 있다고 하니, 이전의 작품들도 뒤져봐야겠다. 어쨌든 좋은 작품을 만났음에는 틀림없다. 

 

 

“글쎄요, 사실 전 여기에 어떤 재난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전에는 그냥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아무것도 없을 뿐이지, 그게 재난인 건 아니잖아요.”

그 말에 요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무이는 가난했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외부인들의 시선일지도 몰랐다. 외부인의 관점에서 무이를 재난 지역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오만일 수도 있었다.

 

이방인에게 말을 걸지 말아야 함에도 요나는 럭과 대화를 나눈다. 결국 그녀의 역할이 정해지고 그 역할에 따라 그녀의 운명이 결정된다. 개인의 선택이 운명을 지어 가는 게 아니라 주어진 역할이 운명을 결정한다. 운명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 그게 바로 윤고은이 『밤의 여행자들』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서울이라는 정글에서 그 손은 회사였고, 무이에서 그 손은 파울이었으며, 파울에게 그 손은 자연이다. (작품해설: 강유정 _ 정오의 그림자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말하자면 무이는 영화 「트루먼 쇼」처럼 만들어진 기획 공간이었다. 하지만 요나는 시나리오에서 벗어나 선택을 한다. 이 선택은 그녀에 대한 질서의 강한 송환을 불러온다. 무이에서, 정글에서, 서울에서 질서는 주어진 역할을 지키는 것이다. 선택을 한다는 것은 역할을 벗어난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쓸모없음으로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게 된다. (작품해설: 강유정 _ 정오의 그림자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공감'과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